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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진의 SR컬처] 미국과 한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남자…영화 '푸른 호수' 리뷰

기사승인 2021.10.10  21: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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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호수. ⓒ유니버설 픽쳐스

- 사회적 메시지와 한국적 정서 담은 아름답지만 가슴 아픈 가족 드라마

영화 '푸른 호수'는 미국 이민법의 불합리함으로 인해 입양된 이후 거의 평생을 미국에서 살았음에도 불법체류자가 되어 강제 추방 위기에 놓인 한 집안의 가장 안토니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저스틴 전)는 새 직장을 구하고 있다.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당장 돈이 더 필요하지만, 지금 일하는 문신 가게에서의 벌이는 시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몸에 어지럽게 새겨진 문신처럼 어두운 과거가 인생 속에 까맣게 스며들어있다. 안토니오의 전과 기록은 그에게 주어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을 번번이 놓치게 만든다.

안토니오는 병원 서류에 이름을 적으려다 머뭇거린다. '르블랑(Leblanc)'. 그는 프랑스어로 하얀색이라는 뜻인 이 성을 30년 넘게 써왔다. 하지만 아직도 문득문득 생소하다.

면접을 봤던 자동차 정비소 주인은 그의 이름을 물어보더니 동양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어디서 왔냐고 질문한다. 그는 안토니오에게 '어디 사는지'가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묻고 있었다. 그 물음이 안토니오의 귓가에서 계속 맴돈다.

세 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해외 입양된 안토니오에게는 스스로 가족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어른이 돼서야 드디어 자신의 의지로 가족을 택한다. 아내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 그리고 새로운 작은 생명. 안토니오가 선택한 가족은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다.

▲푸른 호수. ⓒ유니버설 픽쳐스

안토니오의 의붓딸인 제시에겐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일단 새아빠를 닮았을 게 뻔한 동생이 생기는 게 영 불안하다. 안토니오에게 받던 사랑을 몽땅 빼앗길 것 같아서다. 또 다른 고민 하나는 친아빠 에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안토니오가 자기를 버리고 떠날까 봐 두렵다.

안토니오는 우울해하는 딸에게 말한다. 우리는 아빠와 딸로 서로를 선택한 사이라고. 그리고 아빠는 딸에게 약속한다. 제시와 태어날 동생을 똑같이 사랑할 것이며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편 캐시는 이혼한 전남편 에이스(마크 오브라이언)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무책임하게 떠난 에이스는 양육권과 면접교섭권 문제로 계속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달랐다. 오직 자신만을 사랑해주고 항상 곁에 있어 주며 제시에게도 한없이 다정했다. 캐시는 그런 안토니오의 과거가 어찌 됐든 현재의 그를 믿고 사랑하고 지지한다.

▲푸른 호수. ⓒ유니버설 픽쳐스

뉴올리언스 '크레센트 시티 커넥션(Crescent City Connection)' 아래에 모여 따뜻하고 포근한 매직 아워의 황금빛에 둘러싸여 춤을 추는 안토니오 가족. 가진 것이 절대 많지는 않지만, 이들에게는 행복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아름답고 몽환적인 가족의 행복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균열이 생겨난다. 사소한 말다툼에 에이스와 그의 파트너가 끼어들면서 작은 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그 과정에서 안토니오는 국외 추방 명령서를 받아 든다. 그제야 안토니오는 수십 년간 살며 조국이라 여겼던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안토니오에게는 단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진다. 스스로 미국 밖으로 나가 재입국의 기회를 찾거나 아니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 다만 소송에서 지게 되면 두 번 다시 미국 땅에 발을 디딜 수 없게 된다. 거기다 변호사 고용에는 큰 돈이 필요했다.

안토니오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양부모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이들을 원망한다. 그는 결국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옳지 않은 길을 택하려 한다. 그만큼 안토니오는 절박했고 가족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푸른 호수. ⓒ유니버설 픽쳐스

◆ '한'과 '정'의 한국적 정서 담은 미국 영화 '푸른 호수'

'푸른 호수'는 제7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과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다.

영화 속 안토니오의 삶은 기구하다. 그는 좋은 양부모를 만나 자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입양 직후부터 학대와 방관을 당하고 위탁가정을 전전했던 그에게는 정체성을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친모는 한국이라는 미지의 나라 이미지가 덧씌워진 판타지 세상 안에 존재한다. 그녀는 아들의 마음속 푸른 호수 위에서 낡은 한복을 입은 채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안토니오는 매번 그 우울함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런 안토니오에게 파커(린당 팜)가 불쑥 나타난다. 친모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는 지금껏 지나쳤던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흑인 노예의 낙인에서 이제는 뉴올리언스의 상징이 된 '플뢰르 드 리스(Fleur-de-lis)'. 파커는 안토니오에게 이 문양이 고향 베트남의 수련(睡蓮)을 떠올리게 한다며 몸에 새겨 달라고 부탁한다. 미국인으로 살아온 삶과 베트남의 향수를 동시에 손목에 남기려는 파커. 보트피플 출신인 그녀는 망망대해에서 비참한 죽음을 겨우 피해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남아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정착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푸른 호수. ⓒ유니버설 픽쳐스

베트남 공동체 안에서 언어와 문화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미국인 파커와 한국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미국인처럼 살았지만, 그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하는 안토니오.

대구를 이루는 두 사람의 가족이 함께 모인 파티를 베트남 전통 실크 등불이 은은하게 밝혀준다. 그곳에서 검은색 머리카락을 탐내며 새아빠 안토니오를 닮고 싶어 하는 제시의 모습은 애틋하다.

단란했던 한 가정이 해체 위기에 봉착하고, 소송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뜻하지 않은 일들이 또 다시 갈등과 오해를 낳는 서사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여기에 격앙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후반부 신은 강한 울림으로 채워진다.

한국계 미국인 저스틴 전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 연출 그리고 주연을 맡았으며 미국 입양 제도 문제점을 평범한 인물의 삶 속에 대입해 현실적인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는 앞서 '국'(2017), '미쓰퍼플'(2019)에서도 한인들의 삶을 조명하며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푸른 호수. ⓒ유니버설 픽쳐스

강제 추방 위기에 처한 남편을 지키려는 강인한 아내 캐시 역에는 '대니쉬 걸'(2016)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캐스팅되어 안정적인 감정 연기를 펼친다. 그녀는 자신의 데뷔작 '퓨어'로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국제무대에 섰었다. 또한 '인도차이나'(1992), '닌자 어쌔신'(2009) 등 영화와 TV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1993) 등 한국 작품에서 연기 했던 배우 린당 팜도 출연한다. 제시 역의 시드니 코왈스키가 보여주는 새아빠를 향한 애정이 가득 느껴지는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이 작품은 프로덕션 디자인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접속'(1997),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신보경 디자이너가 캐릭터에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등을 사용해 안토니오와 캐시가 이룬 가족 구성 내면을 시각적으로 잘 표출한다. 또 유니스 예라 리 디자이너는 의상을 통해 뉴올리언스의 지역색과 인물의 정체성을 담아내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스 분위기를 한껏 살린 음악과 감성적인 현악 선율의 오리지널 스코어도 매력적이다.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직접 부른 린다 론스태드의 '푸른 호수(Blue Bayou)' 가사는 안토니오와 그의 가족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다. 이 영화 속에는 감정의 물결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체험을 하게 만드는 영상과 음악이 곳곳에 채워져 있다. 미국과 한국,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안토니오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이 끝없이 출렁인다.

영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한'과 '정'의 관념을 이 영화 속에 담으려 노력했다는 저스틴 전 감독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 제목: 푸른 호수 (원제: Blue Bayou)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 타임: 117분

◆ 개봉일: 10월 13일

◆ 감독: 저스틴 전/출연: 저스틴 전, 알리시아 비칸데르, 시드니 코왈스키, 마크 오브라이언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푸른 호수. ⓒ유니버설 픽쳐스

심우진 기자 site21@daum.net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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