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유통 대기업이 과거의 수직적 조직체계를 벗고 수평적 조직체계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유통업계는 급변하는 트렌드와 시장 환경에 민감한 만큼 유연한 의사결정 체계와 효율적인 업무의 중요성이 높아서다. 이의 하나로 조직 구성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한편 개인의 역량이 기업 성과에 기여하도록 유도하고, 나이와 연차가 아닌 실력과 성과 중심의 문화를 구축해가고 있다. 다양한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 조직 내부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취지다. SR타임스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 2022년 '환골탈태(換骨奪胎)'에 나선 기업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그룹

- 리더에게 통찰력·결단력·추진력 필요 언급

[SRT(에스알 타임스) 박은영 기자] 롯데그룹은 기업문화가 보수적이고 수직적이라는 편견을 벗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수년간의 실적 부진 탓에 어쩔수 없는 조직혁신이란 시각이 있지만 달라진 롯데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신년사에서 “우리 조직에는 어떤 인재라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개방성이 필요하다”며 “융합된 환경 속에서 연공서열·성별·지연·학연과 관계없이 최적의 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철저한 성과주의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 회장은 “최근 헤드쿼터(HQ, HeadQuarter) 체제로 개편한 것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 우리 조직의 실행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라며 “역할 중심의 수평적인 조직구조로 탈바꿈해야만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롯데는 조직체계를 비즈니스 유닛(BU, Business Unit)에서 헤드쿼터 체제로 전환하고 6개 산업군으로 계열사를 유형화했다. 2022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롯데 내부 인사가 아닌 외부인재를 영입하고 롯데쇼핑 이커머스 사업부에선 직급을 없앤 신규 인사제도 ‘커리어 레벨제’를 시행하고 있다.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캠퍼스(경기도 오산시) 개원 행사에 참석한 (왼쪽부터)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 이영구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김교현 롯데 화학군 총괄대표,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 신동빈 롯데 회장, 백주환 캐논코리아 사원(신입사원 대표),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안세진 롯데 호텔군 총괄대표ⓒ롯데그룹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캠퍼스(경기도 오산시) 개원 행사에 참석한 (왼쪽부터)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 이영구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김교현 롯데 화학군 총괄대표,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 신동빈 롯데 회장, 백주환 캐논코리아 사원(신입사원 대표),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안세진 롯데 호텔군 총괄대표ⓒ롯데그룹

◆ 신 회장, 혁신 위한 리더십 강조…“성과 개념 바꿀 것”

신 회장은 지난 20일 경기 오산시 롯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올해 첫 VCM(Value Creation Meeting)에 참석해 "그동안 생각해왔던 성과 개념을 바꾸겠다"며 "과거처럼 매출과 이익이 전년 대비 개선됐다고 해서 만족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VCM은 롯데의 사장단회의로 매해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각 사업군 총괄대표와 지주사 및 계열사 대표 등 70여명이 참석한 이날 VCM에서는 올해 경제·산업 전망, 그룹 경영계획 및 사업전략 등이 다뤄졌다.

신 회장은 혁신을 위한 리더십도 강조했다. 그는 “여러분은 일방향적 소통을 하는 경영자입니까? 아니면 조직원의 공감을 중시하는 경영자입니까?”라고 물으며 리더가 갖춰야 할 세 가지의 힘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어렵더라도 미래를 이해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통찰력,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이더라도 과감하게 발을 디딜 수 있는 결단력, 목표 지점까지 모든 직원들을 이끌고 전력을 다하는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가장 쉽지만, 그렇게 해서는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만들 수 없다”며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혁신의 롯데를 만들어 달라”고 사장단에 당부하며 VCM을 마무리했다.

▲롯데그룹 2022년 정기 임원인사 신임 여성임원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우순형 롯데백화점 상무, 곽미경 롯데정보통신 상무, 강은교 롯데정보통신 상무, 손유경 롯데물산 상무, 심미향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상무, 강경하 롯데정밀화학 상무. ⓒ롯데그룹
▲롯데그룹 2022년 정기 임원인사 신임 여성임원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우순형 롯데백화점 상무, 곽미경 롯데정보통신 상무, 강은교 롯데정보통신 상무, 손유경 롯데물산 상무, 심미향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상무, 강경하 롯데정밀화학 상무. ⓒ롯데그룹

◆ 조직 체계 바꾸고 외부 인사 수혈…여성 임원 6명 배출

롯데는 지난해 말 그룹 경영에 있어 의사결정 체계를 BU에서 HQ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부터 약 5년간 BU 체제를 유지해왔으나 사업군별로 한층 더 빠른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먼저 출자구조 및 업의 공통성 등을 고려해 6개 사업군(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으로 계열사를 유형화했다. 이중 주요 사업군인 ▲식품 ▲쇼핑 ▲호텔 ▲화학 사업군은 HQ 조직을 갖추고, 1인 총괄 대표 주도로 경영관리를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롯데는 HQ가 기존 BU 대비 실행력이 강화된 조직이라고 평가했다. 사업군 및 계열사의 중장기 사업 전략을 수립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무와 인사 기능도 보강해 사업군의 통합시너지를 도모할 계획이다. 또 구매와 IT, 법무 등의 HQ 통합 운영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더욱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짐으로써 조직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계열사 책임경영 및 컴플라이언스가 강화됨에 따라 그룹의 ESG 경쟁력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정기 임원인사도 단행했다. 인사 방향에 대해 신 회장은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인재 확보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이번 인사에서 각 분야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재를 수혈했다. 여성 및 외국인 임원을 지속적으로 확대, 조직의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에 따라 여성 임원 6명과 외국인 임원 1명을 신규 선임했다.

김상현 전 DFI 리테일 그룹 대표이사와 안세진 전 놀부 대표이사를 유통과 호텔 사업군의 총괄대표로 각각 선임했다.

신규 여성 임원으로는 ▲우순형 롯데백화점 상무 ▲곽미경·강은교 롯데정보통신 상무 ▲손유경 롯데물산 상무 ▲심미향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상무 ▲롯데정밀화학 강경하 상무 등 총 6명의 신규 여성 임원이 배출됐다. 마크 피터스(Mark Peters) LC USA 총괄공장장도 신규임원으로 선임됐다.

◆ 롯데쇼핑 IT기업 문화 수혈…직급 없앤 ‘커리어레벨제’ 시행

롯데 통합 온라인쇼핑몰 롯데온은 직급을 없애는 신규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롯데온을 운영하는 롯데쇼핑 롯데이커머스 사업부는 지난 11일 전 직군에 '커리어 레벨제'란 이름의 신규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커리어 레벨제는 수평적 조직문화 속에서 협업을 강조하기 위한 인사 제도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정보기술(IT) 기업 식 인사 제도란 점에서 이베이코리아 출신인 나영호 롯데온 대표의 영향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커리어 레벨제로 롯데온에는 기존 ▲담당 ▲대리 ▲책임 ▲수석 등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직급 대신 팀장과 팀원 직책만 남는다. 이후 조직 내 역할 및 역량에 따라 8단계로 나뉜다. 직원 개인에게는 전문성과 역량 등에 따라 성장 지표 등급인 레벨이 부여된다. 개인 레벨은 다른 직원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능력에 따라 레벨업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 근무 기간이 9개월을 넘으면 레벨업 자격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 직급 체계에서는 신입사원이 수석으로 승진하려면 13년이 걸렸지만 신규 커리어 레벨제에서는 최고 레벨인 8단계까지 빠르면 7년 안에 올라갈 수 있다. 

롯데온은 기존 상대평가 대신 능력 위주의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가 시스템도 재정비했다. 직원 능력 육성에 초점을 맞춰 순위 매기기에서 벗어난다는 취지다.

롯데온은 커리어 레벨제 도입에 앞서 3차례 간담회를 열어 직원들 공감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롯데 관계자는 커리어 레벨제에 대해 "전 직원 대상으로 제도 개편에 대한 동의 절차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찬성했다"고 했다.

▲2018년 7월 진행된 롯데그룹 남성육아휴직자교육 대디스쿨. ⓒ롯데그룹
▲2018년 7월 진행된 롯데그룹 남성육아휴직자교육 대디스쿨. ⓒ롯데그룹

◆ "복지는 평등하게"…롯데, 남성 직원 육아휴직 비중 높아

롯데는 국내 대기업 최초로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권을 보장한 기업이다. 2017년 1월 1일부터 전 계열사에서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법적으로 남성의 육아휴직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조직 내 분위기 등으로 인해 실제 사용하는 남성이 적어 가정의 육아부담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남성육아휴직 도입 첫 해인 2017년 남성육아휴직 사용자는 1,100명이었다. 이는 전년(180명) 보다 6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제도가 안착되면서 2020년까지 누적 5,913명의 남성 직원들이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했다. 

이 같은 결과는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신 회장은 평소 조직 내 다양성이 기업 문화 형성과 업무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소신을 갖고, 환경 조성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이에 롯데는 양성평등과 ‘워라밸’을 통한 기업문화의 변화 방안으로 ‘남성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전 계열사에 시행했다.

이와 함께 롯데는 남성육아휴직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인 ‘대디스쿨’을 운영하며 육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휴직기간 육아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도록 돕고 있다. 대디스쿨아빠 육아의 중요성과 육아 노하우, 자녀의 연령별 특징 등 육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내용이 구성돼 있다.

실제로 남성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육아휴직 제도가 육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또한 육아를 부부가 함께 한다는 심리적 위안 부분과 육아휴직 후 자녀와의 친밀한 관계 유지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 관계자는 “롯데의 남성육아휴직제도가 빠르게 안착하며 다양한 순기능이 조직 안팎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정책을 통해 일과 가정의 양립 활성화에 노력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롯데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시에 1개월에서 1년간 휴직할 수 있는 ‘자녀입학돌봄휴직’도 도입하고 있다.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라는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가 부모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시간이라고 판단해 도입한 제도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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