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유통 대기업이 과거의 수직적 조직체계를 벗고 수평적 조직체계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유통업계는 급변하는 트렌드와 시장 환경에 민감한 만큼 유연한 의사결정 체계와 효율적인 업무의 중요성이 높다. 이에 따라 유통업계는 조직 구성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한편 개인의 역량이 기업 성과에 기여하도록 유도하고, 나이와 연차가 아닌 실력과 성과 중심의 문화를 구축해가고 있다. 다양한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 조직 내부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취지다. SR타임스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해 2022년 '환골탈태(換骨奪胎)'에 나선 기업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현대백화점그룹

- 이색 패션·라이프 스타일 전문숍 입점 등 2030세대 맞춤 전략 주효…매출 전년비 급증

[SRT(에스알 타임스) 박은영 기자]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발빠른 대응을 위해 조직이 유기적으로 협업해야한다고 강조해왔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 주기가 짧아지는 만큼 내외부적 경합보다 개방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봤다.

25일 현대백화점그룹에 따르면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정 회장은 “비전 2030을 달성을 위해 고객의 변화된 요구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찾는 ‘발견’과 내·외부 협력을 통해 가치의 합을 키우는 ‘연결’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기되는 다양성과 다름을 수용하면서 일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공감을 기반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초 '비전 2030'을 선포하며 신성장 전략 추진과 미래 신수종 사업 진출 등을 목표한다고 밝혔다. 비전 2030을 통해 계열사별 맞춤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맞춘 조직문화 혁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협력을 통한 성과를 위해 임원이 갖춰야할 자세도 언급했다. 정 회장은 “인과관계가 명확한 논리로 일의 목적에 대해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협력 과정에서 상충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서 원활한 협력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야 하고, 구성원의 역할을 근거로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본사 사옥. ⓒ현대백화점그룹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본사 사옥. ⓒ현대백화점그룹

◆ 1969년 이후 출생 임원 절반…사장급 외부인사 첫 영입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11월 2022년 정기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승진 27명, 전보 28명 등 총 58명에 대한 정기임원인사다. 내부 안정을 위해 그룹 계열사 대표이사를 모두 유임하는 한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젊은 인재를 신규 임원으로 선임했다.

주목할 점은 사상 처음으로 사장급 임원을 외부인사로 영입했다는 점이다. 이번 정기임원인사에서 영입된 박철규 사장은 1989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제일모직 패션부문 패션사업2부문장과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을 지냈다. 국내 유통업계가 해외패션과 화장품 등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현대백화점그룹도 전문가를 영입해 사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외부인재 영입과 더불어 임원의 세대교체도 이뤄지는 모습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조사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기준 국내 30대 그룹 상장사 197개 기업의 임원 7,438명(사외이사 제외) 중 1969년 이후 출생한 임원은 3,484명으로 평균 46.8%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백화점은 1969년 이후 출생 임원의 비중이 51.2%로 절반을 넘겼다.

▲현대백화점이 지난달 11일 판교점에 신진 브랜드를 대거 입점하고 MZ세대 전문관을 선보였다. ⓒ현대백화점그룹
▲현대백화점이 지난달 11일 판교점에 신진 브랜드를 대거 입점하고 MZ세대 전문관을 선보였다. ⓒ현대백화점그룹

◆ MZ세대 공략 위해 세대·부서간 화합 중요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 유입 전략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20.2%, 53.5% 증가한 2조1,032억원, 3,048억원을 기록했다. 백화점부문 매출은 2조1,032억원으로 20.2% 늘었다. 영업이익은 3,048억원으로 53.5% 증가했다.

지난해 현대백화점의 2030세대 매출액과 고객 수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30세대 고객 수는 전년도보다 각각 ▲86.7% ▲54.2% 늘었다. 매출 비중은 43.4%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특히, 2030세대 우량 고객이 몰리며 20대 고객 매출은 전년도 보다 95.8% 늘었고 30대 고객 매출은 40.3% 증가했다.

유통업계가 최근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소비가 위축되는 점을 고려해 온라인몰, e커머스 플랫폼 확장에 나섰지만 정 회장은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고객 경험을 다양화해 2030세대 고객 유입에 성공해 '미래형 백화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부문에서는 보다 많은 제품을 가격경쟁을 통해 저렴하게 선보이기 보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온라인몰 10개를 전문몰로 운영하며 명품, 가구, 패션 등 특정 상품군만 판매했다. 

특히 더현대 서울은 이색적인 패션, 라이프스타일 전문점 등을 선보여 기존 백화점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콘텐츠를 대거 제공했다. 일명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명품 매장없이 MZ세대를 조준한 전략을 통해 호실적을 기록했다. 

또한 전체 영업 면적(8만9100㎡)의 51%만 매장으로 만들고 나머지 절반을 실내 조경과 고객 휴식 공간으로 꾸몄다. 대부분 백화점이 밖을 볼 수 없도록 설계되지만 더현대 서울은 내부에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만들고 하늘을 볼 수있도록 했다. 

이런 가운데 정지선 회장은 MZ세대가 소비 패턴을 주도하는 만큼 내부에서도 세대, 직급 간 격차를 줄이고 다양성을 수용하며 화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 회장은 “MZ세대가 주도하는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빠른 가운데 팬데믹까지 더해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기존 사업의 안정화에만 집중한 나머지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세대·부서간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해야 할 고민과 실행을 하기보다는 성장에 대한 갈증만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 봐야한다”고 했다.

또 그는 “예측이 불가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외부의 경쟁적 경합보다는 개방적 관점을 바탕으로 부서간, 계열사간 협력과 온·오프라인과 다양한 이업종간의 연결을 통해 가치의 합을 키워 나가야 한다”며 “서로 다른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기되는 다양성과 다름을 수용하면서 일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공감을 기반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해 나가야한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이 세련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품질만을 고수하던 ‘백화점 쇼핑백’을 친환경 제품으로 전격 교체했다. ⓒ현대백화점그룹
▲현대백화점이 세련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품질만을 고수하던 ‘백화점 쇼핑백’을 친환경 제품으로 전격 교체했다. ⓒ현대백화점그룹

◆ 현장 이야기 반영한 워라벨 조성…복리후생도 다양

정지선 회장은 2003년 부회장 취임 당시 ‘주니어 보드’ 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의 건의사항, 애로사항을 청취해 왔다. 이 제도는 정 회장이 직급을 떠나 다양한 직원들과 대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정 회장의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현재 코로나19 이후 대면 모임이 어려워지면서 주니어 보드 제도를 통한 대화 모임은 잠시 중단한 상태"라며 "다만, 사내 커뮤니티를 활용해 임직원과의 소통은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의 신념은 근무제도와 직원 복리후생에서 잘 들어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일찍이 임직원의 워라벨(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제도 도입에 선도적으로 나섰다.

먼저 2013년 유통업계 최초로 'PC오프제‘를 도입했다. ‘PC오프제’는 PC전원을 자동으로 종료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임직원의 일과 가정 양립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시도다. 본사에선 오후 6시, 점포에선 오후 8시 30분에 자동으로 PC전원이 꺼지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현대홈쇼핑과 현대리바트 등 계열사까지 확대됐다.

지난해에는 결재판 약 2만개를 폐기했다. 정해진 틀에 맞춘 문서작업이 필요한 결재 과정을 간소화해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시도다. 현재는 5~6개 문장으로 결재 문서를 대체하는 ‘간편 보고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스마트폰, PC 등 전자 기기에 익숙한 직원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대면보고 방식에서 벗어나 비대면 보고 문화를 구축하게 됐다.

복리후생의 경우 1인 가구, 신혼부부, 육아 가정 모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게 특징이다. 우선 ▲직원선물 ▲난임직원 수술 ▲경조금 지원과 ▲주택자금지원 ▲가족케어(Care) 복지제도 ▲가족사랑 캠프 ▲가족문화 프로그램 ▲가사도우미 지원 등 제도가 마련돼있다.

또 심리상담프로그램(EAP)을 통해 스트레스 관리와 재무 설계, 법적 상담 등 임직원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이슈에 종합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안식월 휴가제’를 통해서는 차장급 이상이 한 달간 휴가를 부여받아 리프레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임신·출산과 관련해선 직원이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임신부 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별도로 육아휴직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출산 앞·뒤 100일(법적기준 90일)의 휴가를 지원하고 배우자가 출산할 시 10일의 휴가를 자동으로 부여해 의무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외에도 ‘여직원 홈 안심 서비스’로 1인가구 여성 직원들에 무인경비서비스를 제공하고 조기출근과 심야 근무 후 퇴근, 공식 회식 종료 후 귀가 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여직원 안심 콜택시 제도’도 운영 중이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개인과 부서간 편차가 있고 조직문화에 대한 체감을 수치화 할 순 없겠지만 회사에서 일하기 좋은 곳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다보니 구성원들 업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며 "이전부터 계속 운영해오던 근무제도나 복리후생을 이어가고 있고 다양한 컨텐츠를 시도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의견 제안을 받아 개선할 부분은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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