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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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한 울림의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스포일러 경고: 이 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분위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장례식장. 그곳에서 '호성'(손현주)은 울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시신을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다. 오열하는 어머니 '정님'(손숙)과 슬퍼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그는 홀로 감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호성은 죄 많은 사람이다. 감옥에서 8년의 세월을 보냈다. 깡패로 살아온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장례식장 조문객 사이에서는 수군수군 뒷말이 오간다.

▲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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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모두 모였지만 호성은 환영받지 못하는 장남이자 가장이다. 부동산 일을 하는 동생 '종성'(박혁권)에게는 계속 면박만 당한다. 출소했으면 이제 철부지 짓 좀 그만하라는 잔소리다.

장녀 '은옥'(박소진)은 만사에 진지함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는 건성꾼 아버지가 부끄럽기만 하다. 은옥은 결혼을 앞뒀다. 하지만 아버지 호성에게 남편 될 사람을 보여주기 싫을 정도다. 호성은 자기 딸 결혼식에 참석이나 할 수 있을까.

무명 배우인 아들 '동혁'(정지환)은 호성의 인생 훈수가 마뜩잖지만 속으로 감정을 삭인다. 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아버지 편을 들어준다.

▲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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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라고 하나 있는 '양희'(정석용)는 목소리만 큰 오지랖 꾼이다. 유유상종은 항상 옳다. 호성의 친구답게 그도 철이 덜 든 사고뭉치다. 눈치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주사 부리는 게 일이다. 그래도 양희는 군인 아들 덕에 자기 누울 자리는 있다. 따지고 보면 호성보다는 나은 처지.

가족 중에 호성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 정님뿐이다. 그녀 눈에 호성은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기만 하다.

▲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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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으로 한가락 했던 호성은 감옥살이로 황금 같은 세월을 낭비해버린 퇴물 신세다. 그래도 다시 한번 전성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평생 주먹질만 해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깡패짓뿐이지만 말이다.

호성은 옥살이하는 동안 어느 정도 조직에서 위치를 잡게 된 후배 석주가 자신에게 한자리 마련해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예전에 자신에게 신세 진 일이 있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한편 인맥을 죄다 끌어모은 장례식장이 시끌벅적해지자 호성은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 한몫 잡을 기발한 계획을 짠다. 과연 호성은 그토록 간절히 열망하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까.

▲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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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팡파레'(2020)로 감독상을 받았던 이돈구 감독의 영화 '봄날'은 끝맛에 뭉클한 여운이 남는다. 인생이 진하게 담긴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타이틀 롤인 호성은 조직 폭력배 이력을 가졌다. 결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서사는 지극히 보통 사람들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감정적 공감을 끌어낸다.

장례식장은 한 인간의 인생 마지막을 보여주는 곳이다. 한평생 같이 지낸 가족을 떠나보내는 자리인데 미우나 고우나 슬픔을 느끼지 않을 리 없다.

▲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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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성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죽는 것은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태연하게 담배를 태운다.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여전히 막돼먹은 자식처럼 행동한다. 이 정도면 상당한 비호감 캐릭터 일법한데 이야기가 쌓여갈수록 묘하게도 그에게 애잔한 마음이 든다.

사실 호성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가족에 대한 애정을 차마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다. 과거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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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그런 호성의 속마음을 진즉 알아차릴 수 있다. 말로는 전해지지 않는 내면의 외침 하나하나가 손현주의 탄탄한 연기력을 통해 고스란히 관객의 가슴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봄날'은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그대로 연상되는 영화다.

더는 주저앉고 싶지는 않아 버둥거리는 호성의 절박함이 영화의 밑바닥에 나지막하게 깔려 있다. 그렇다고 특징 없이 우울하기만 한 영화에 머물지는 않는다.

▲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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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새처럼 호성 곁을 맴도는 코믹 캐릭터 양희의 존재는 그래서 값지다. 관객을 울다 웃게 하는 절묘한 감정의 균형은 신스틸러 정석용의 빛나는 연기를 통해 완성된다.

언제 철드나 했던 호성은 혼자 남게 되자 남 눈치 안 보던 어린 시절 순수한 아이가 되어본다. 그러자 비로소 눈물이 흐른다. 호성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는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봄날'은 관객이 주인공 호성에게 시나브로 감정이입이 되는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을 재발견하게 되는 영화다. 최근 영화관에 걸린 영화 중 거의 유일하게 강한 울림이 있는 서사를 갖췄다. 완성도가 높은, 작지만 큰 영화다.

이 영화를 본다면 누군가는 인생 속에서 잊고 지냈던 제2의 전성기가 봄날처럼 다시 찾아오는 행운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봄날.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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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봄날
◆각본/감독: 이돈구
◆출연: 손현주, 박혁권, 정석용, 박소진, 정지환, 손숙
◆제공/배급: 콘텐츠판다
◆제작: 엠씨엠씨
◆개봉: 2022년 4월 27일
◆관람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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