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창준 전 미연방의원(사진 왼쪽)이 취임식 축하 만찬장에서 악수하고 있다.ⓒ김창준한미연구원
▲윤석열 대통령과 김창준 전 미연방의원(사진 왼쪽)이 취임식 축하 만찬장에서 악수하고 있다.ⓒ김창준한미연구원

◆ 홍용락고문이 만난 '시대를 개척한 사람들' [1] 김창준 전 미연방 하원의원

코로나 팬데믹, 21세기 이상기후 변화 등 복합적인 도전과 위기속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조로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주역들은 누구인가? ‘시대는 이길수 있어도, 세월은 그 누구도 이길 수도 없다’ 는 문구는 인간 노력의 한계점에 대한 표현이다. 1961년 당시 미국 유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캘리포니아 백인들이 밀집한 지역에서 최초의 다이아몬드바 시의원, 최초의 다이아몬드바 시장을 역임한 뒤 주의원을 거치지 않고, 1992년 최초의 한국계 미연방하원 의원을 지낸 김창준 의원은 한국인으로서 '이민의 나라' 미국에 그 시대상황을 이겨낸 전설이다. 본지 홍용락 논설고문이 만난 '시대를 개척한 사람들' 그 첫번째 순서로 김창준 전 미연방하원의원을 만났다. [편집자주]

(약속시간에 맞춰 전경련회관 ‘김창준정경아카데미’를 찾아 지하식당에서 70대초반으로 보이는 건강미와 정열이 넘치는 김창준 전의원, 부인 제니퍼 안, 이선호실장과 식사를 마친후 17층 김창준한미연구원·김창준정경아카데미 회의실에서 곧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창준 전의원(사진 가운데)과 부인 제니퍼 안(사진 왼쪽)이 본지 홍용락 논설고문(사진 오른쪽)이 김창준한미연구원·김창준정경아카데미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창준한미연구원
▲김창준 전의원(사진 가운데)과 부인 제니퍼 안(사진 왼쪽)이 본지 홍용락 논설고문(사진 오른쪽)이 김창준한미연구원·김창준정경아카데미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창준한미연구원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尹, 한미동맹 견고히 하는데 앞장서 달라"

-6년만에 미국 시민권 받고 대성통곡...한·미간 민간교류에 애국심 쏟아 부을것

-'김창준한미문화원'은 미국 정·재계와 민간교류 발판 구축

-김창준아카데미는 한·미간 정치와 기업교류 위한 강좌 개설

 

Q. 지난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서 윤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두분 내외 찍은 사진이 여기저기 실렸는데 무슨 의미있는 얘기를 나누셨는지요?

== 선거전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 컨퍼런스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행사에서 당시 윤 후보자를 만나 격려의 인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취임식 당일 만찬장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권성동 국민의 힘 원내대표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 중 윤 대통령이 자리에 오셔서 사진도 찍고 인사를 나누면서 제게 앞으로 한미동맹을 견고히 하는데 많이 도와달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이때 옆에서 부인 제니퍼 안 여사가) 윤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를 만났는데 많이 도와 달라는 말을 몇번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김 여사가 겪은 여러 고난에 대해 위로를 했는데, 울먹거리는 거 같아 마음이 착잡했어요. 그래서 제니퍼 안 여사가 가왕 조용필님의 처재라고 말씀드리고,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만큼 처신이 힘들다는 말도 나눴다고 합니다. 

 

Q. 한국계 최초로 미연방 3선 하원의원을 지낸 분으로 윤석열정부가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하며, 또 모국을 위해 무슨 역할을 하고 싶나요?

== 무엇보다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산다’. 또 ‘기업을 살려야 경제가 산다’ 는 자유시장경제원칙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미국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도 이 정책이 변함 없기 때문에 미국이 경제적으로 세계 최고의 부를 가진 나라로 몇 십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두번째로 한미동맹을 더욱 견고히 해야 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광복후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를 경험해 본 결과 (김 의원은 70대초반으로 건강해 보이지만, 실제는 1939년생으로 우리 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겪은 세대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미국 밖에 우리나라를 도와줬고, 도와주려는 나라가 없지 않습니까?

일본이 도와 줬나요? 중국이 도와 줬나요? 몇 년전 내가 하고 있는 한·미간 교류사업인 ‘미연방의원협회(FMC)’를 초청해 6.25전쟁 기념행사를 가졌는데, 미국 전·현직 연방의원들도 6.25이후 한국의 발전상에 놀랐지만, 전쟁을 겪은 나는 그때 뿐 아니라, 지금까지 미국이 한국을 돕는데 마음 깊은곳에서 감동이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외빈 초청 축하만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니퍼안, 김창준 전 미연방의원,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김창준한미연구원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외빈 초청 축하만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니퍼안, 김창준 전 미연방의원,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김창준한미연구원

Q. 3선 미 연방 하원의원을 하면서 한국을 위해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 첫째로, 90년대 김대중 , 김영삼 전 대통령들을 미연방 국회의사당 상하원 합동연설에 초청하는 법안을 내서, 두 분을 초청해 연설하게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은 민주화가 제대로 안 된 나라로 많이 인식하고 있었을 텐데, 한국 정치민주화의 상징인 두 분이 미 의회에서 연설함으로서 한국 민주화 실상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보람있는 활동은 1997년 대만 에너지 회사가 방사성폐기물 20만배럴을 북한에 판매하겠다고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한 일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방사성 폐기시설이 완벽할 수 없는 북한이 군사적으로나 또는 휴전선근처에 아무렇게 파묻어 지하침출수가 남한으로 흘러와서 남한의 모든 물이 방사능으로 오염될 수도 있는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도움 요청 전화를 받았습니다.

미 연방하원의원이 자기지역구나 미국의 이익이 아닌 다른 나라 이해관계로 나서면, 내 입장도 묘하게 되는 터라, 하원의장을 찾아가 한국민의 이해관계만 아니라 주한미군의 이해관계를 강조함으로서,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도움을 받아 모국의 문제를 해결한 것도 보람 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외빈 초청 축하만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니퍼 안,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김창준 전의원ⓒ김창준한미연구원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외빈 초청 축하만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니퍼 안,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김창준 전의원ⓒ김창준한미연구원

Q. 1965년 이민갔다가 몇 년전 한국에 돌아와 김창준아카데미와 (사)김창준한미연구원 을 설립해 모국 역사와 나라를 위해 봉사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요?

== 분명하게 말하면 미국인인 나는 미 연방3선의원이기 때문에 연금혜택도 많아 굳이 한국에 와서 경제적 곤란을 겪으면서 활동을 할 필요는 없지요.

그러나 내가 가진 DNA의 정체성은 ‘애국심’이 커다는 것입니다. 나는 미국에 있을 때 미국인으로서 미국에 대한 남다른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나는 한국계 최초로 다이아몬드바 시장을 하고 다음으로 통상 주 의원을 해야 하는데, 나는 막바로 연방하원의원 예비선거에 나섰지요.

같이 출마한 7명의 후보들 중 내가 최약체 후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민사회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여러분 나는 미국에 와서 6년만에 시민권을 받고 감격해서 대성통곡 했습니다. 여러분 시민권 받고 눈물 흘린 분 있는가요” 되물었으며, 그 때 그들의 미합중국에 대한 애국심을 끌어 올려 선거에서 당선됐습니다.

한국에서 조금은 벅차지만 한·미간 정부, 기업 등 민간교류에 앞장서며, 한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애국심을 쏟아 부으려 합니다.

앞서 말한 것 처럼 미국에 거주하면서 일년에 한 두번 한국을 방문해 특강하는 정도만 해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미국의 바닥 정서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은 한국에는 진정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고, 또한 살아오면서 간직한 모국에 대한 예의도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좀 힘들지만 김창준한미문화원을 만들어 민간에서 미국 정·재계와의 교류 발판을 만들고, 김창준아카데미는 한·미간 정치와 기업교류를 원하는 분들에게 강좌를 제공하고, 필요시 컨설팅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김창준 전 의원과 부인 제니퍼 안(오른쪽)ⓒ김창준한미연구원
▲김창준 전 의원과 부인 제니퍼 안(오른쪽)ⓒ김창준한미연구원

Q. 한국에서 (부분에 대해서 같이 인터뷰하는 제니퍼 안 여사로부터 구체적인 실행과정에 대해 들어보기로 하고) 1965년 이민가셔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건축회사를 세워 큰 돈을 벌어셨다면서요?

== 졸업 후 토목기사로 경험을 쌓은 후 39세에 제이킴엔지니어링(Jay Kim)이란 설계회사를 세워 당시 로스앤젤레스가 바다 표면 보다 낮아 바다물이 역류하는 것을 지하의 물로 밀어내는 공법을 창안해 많은 부를 축척했습니다.

한번 성공 후 당시 알래스카에서 캘리포니아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설계하는 하청회사로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그 당시 유학가서 고학하면서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터전을 잡은 셈입니다

그 때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 나만의 원칙은 미국사업을 하면서 미국사회관습과 불문율에 무조건 순종하고, 한국적 사고방식은 버리는 적응을 하자는 것입니다.

로마에 가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죠.

옛날에 통용되는 사업가치지만 오늘날 사업하시는 분들도 한번쯤은 응용해 봄직한 사업가치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게 사업을 하다가 1990년대 정치에 입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요?

== 미국은 그때도 벌써 정치가 시스템적으로 순환되는 시기였던거 같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나는 흔히 한국남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권력 성취욕이 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캘리포니아에 살았지만 인종차별, 특히 한국인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이 크게 있어야 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기업가로서 사회의 리더로 부각되기 시작했죠.

예를 들어 ‘아시안기업인협회’ 회장으로 활동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백인들이 많이 사는 부촌이지만 저를 지역주민의 이해를 해결해 줄 해결사로 추대하기 시작한 겁니다.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외빈 초청 축하만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두번째 제니퍼 안, 김창준 전의원,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사진 오른쪽 첫번째) ⓒ김창준한미연구원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외빈 초청 축하만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두번째 제니퍼 안, 김창준 전의원,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국무총리,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사진 오른쪽 첫번째) ⓒ김창준한미연구원

Q. (제니퍼 안에게) 17세에 이민가셔서 뉴스앵커, 제작PD도 하시고, 이후에 광고홍보기획사 CEO로 탄탄히 자리잡으셨는데, 지금도 그 일을 하고 계시는지요?

== 경영하는 회사가 미국정부 상대 회사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계속 활동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일과 병행하기 어려웠습니다.

24년전 김 의원과 결혼했고 10여년전 김 의원께서 한미동맹을 위한 민간외교기관인 김창준 한미연구원과 김창준정경아카데미를 설립하면서, 그 이후에 부이사장을 맡아 대내외적으로 내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달에도 미연방 전·현직의원협회(FMC)임원을 맡고 있어 김 의원을 대신해 미국에 가서 민간외교의 첨병역할을 하고 올 예정입니다.

벌써 이전에도 몇차례 FMC행사로 종교단체, 조선일보 등 언론사와 함께 미 연방의원들을 초청해 민간외교 를 할 때 실무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제니퍼 안에게) 오늘 만나서 지금까지 살아오신 걸 보면 모든 일처리를 김 의원님 위주로 한 것 같고 제니퍼 안은 전혀 빛도 나지 않게 하시는 거 같습니다.

== 맞아요. 저는 김창준의원님을 살아있는 한국의 영웅이라고 존경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연방의원이 된 것도, 그렇지만 세번이나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는 것은 능력이나 인격적인면에서 완전한 상태가 아니면 미국사회에서 불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

특히 미국에서 편안한 길을 놔두고 고국에 돌아와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뭔가 조국을 위해 노력하는 애국심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돕고 싶어집니다.

 

▲ⓒ홍용락 논설고문
▲ⓒ홍용락 논설고문

(사실 인터뷰 내내 김창준의원은 본색은 다정다감한 성격이지만, 처음에는 무뚝뚝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미연방의원 세 번 했다면 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선입감을 가질 수도 있다. 반면에 아내인 제니퍼 안 부이사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긍정과 명랑함을 가진 분이다.

순간순간 김 의원께 현란하고 낙천적인 멘트로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표현을 하는 제니퍼 안을 지켜보면서 부부의 행복과 금실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아 인터뷰 내내 흐뭇했다)

 

[대담=홍용락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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