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 스틸. ⓒ판씨네마
▲'멘' 스틸. ⓒ판씨네마

- 경악의 비주얼 쇼크, 자연과 생명에 대한 양가적 시선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지난 7일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 최초 공개된 ‘멘’은 유럽의 그린맨 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공포 영화다.

연출을 맡은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15년 전부터 각본 완성에 매달렸다”고 밝힌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엑스 마키나’(2015), ‘서던 리치: 소멸의 땅’(2018)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생명체의 본질에 관해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멘' 스틸. ⓒ판씨네마
▲'멘' 스틸. ⓒ판씨네마

‘하퍼’(제시 버클리)는 남편의 죽음 이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시골로 요양을 떠난다. 런던에서 4시간이나 운전해 코츠월드 지역 외진 마을 낡은 저택 앞에 도착한 하퍼. 집주인 '제프리'(로리 키니어)는 그녀를 웃으며 반겨준다.

그는 조금은 모자라고 경박해 보이지만 친절한 남자다. 하지만 하퍼가 정원의 사과를 따 먹었다고 하자 ‘금단의 열매’에 손댔다며 겁을 주듯 재미없는 농담을 건네는 제프리. 그는 어딘가 알 수 없는 남자다.

지은 지 500년이나 된 시골집이지만 꿈에도 바라던 아름답고 엔틱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어 하퍼는 너무나 만족스러워한다. 전화기 신호에 가끔 문제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멘' 스틸. ⓒ판씨네마
▲'멘' 스틸. ⓒ판씨네마

그녀가 시골에 온 이후 풍광 대부분은 초록색으로 가득 차 있다. 하퍼는 곧바로 평온함과 안정감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녀는 숲속을 산책하다가 정체 모를 존재에 계속 쫓기기 시작한다. 하퍼는 마을 경찰을 비롯해 주변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그들은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 경악할 수밖에 없는 후반부 비주얼 쇼크 시퀀스

‘멘’은 시작부터 레슬리 던칸의 ‘Love Song’과 매직아워의 붉은 빛에 물든 공간을 배치한다. 동시에 참혹하고 당황스러운 장면을 배치해 ‘아름다운 불쾌감’을 안긴다. 이러한 감독의 미장센은 본편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며 마지막까지 안정감과 불안감, 아름다움과 추함, 선의와 악의, 생명과 죽음을 계속 반복적으로 관객에게 노출해 양가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멘' 스틸. ⓒ판씨네마
▲'멘' 스틸. ⓒ판씨네마

울창한 숲은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초록으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 발견된 거대한 터널은 칠흑 같은 심연의 공포를 일깨운다. 이 여성 성기에 대한 메타포와 터널 끝에 도사리고 있던 무언가의 정체는 영화 후반부에 명확해진다.

하퍼는 전남편으로부터 죄책감을 떠안게 된 이후 집주인, 경찰관, 소년 등 등에게서 친절과 악의, 안전과 불안을 각각 경험한다. 심지어 그녀에게 도움을 주겠다던 목사는 선의의 껍데기 속에 욕정을 감추고 있다. 관객은 그의 손가락 움직임만으로도 표리부동한 내면을 엿볼 수 있다.

▲'멘' 스틸. ⓒ판씨네마
▲'멘' 스틸. ⓒ판씨네마

하퍼가 베어 문 것은 결국 ‘아담의 사과’. 극 중 문을 두드리고, 관음하고, 욕설을 내뱉고, 침입하고, 돌격해오는 모든 남성을 포괄하는 하나의 단어는 '폭력'이다.

여기서 하퍼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공포 영화 여주인공 클리셰를 거부한다. 칼과 도끼를 거머쥔 하퍼 역의 제시 버클리가 펼치는 열연은 압권. 아울러 1인 9역을 해내는 로리 키니어의 광기에 찬 연기력과 존재감은 이 영화의 중요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멘' 스틸. ⓒ판씨네마
▲'멘' 스틸. ⓒ판씨네마

경이로운 자연에서 태어나 끊임없는 생명의 굴레를 이어온 인간. 원초적 자연 ‘그린맨’과 다산의 여신 ‘실라나히그’가 뒤얽힌 질긴 생명력 안에서 계속 태어나고 탈피하는 후반부 시퀀스는 그로테스크한 공포와 감당하기 쉽지않은 비주얼 쇼크를 안겨준다.

▲'멘' 스틸. ⓒ판씨네마
▲'멘' 스틸. ⓒ판씨네마

‘서스페리아’(1977) 같은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처럼 아름다움과 공포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미장센도 이 영화의 특징. 하나의 씨앗이 삼켜져 새로운 새싹이 돼 또 다른 생명이 움틀 때, 이 기이한 영화는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수미상관의 연출을 통해 결말을 맞이한다.

그로테스크한 ‘미녀와 야수’ 버전 같은 이 작품은 오리지널 스코어조차도 공포와 아름다움이 혼재한다. 에필로그에 흐르는 존 레논 버전의 ‘Love Song’에 대해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갑자기 아름다운 음악이 삽입되어서 불편할지 모르지만, 프레임에 씌인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을 즐긴다”고 밝혔다. 

의도된 불편함의 내재화가 이루어진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과 평가를 얻을 수 있는 호러 영화다. 분명한 것은 ‘이상해도 괜찮아’라는 슬로건의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멘' 포스터. ⓒ판씨네마
▲'멘' 포스터. ⓒ판씨네마

◆ 제목: 멘(MEN)

◆ 감독/각본: 알렉스 가랜드

◆ 음향: 글렌 프리맨틀

◆ 출연: 제시 버클리, 로리 키니어

◆ 수입/배급: 판씨네마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개봉: 2022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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