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 할리우드 영화가 지배해온 스펙터클 콘텐츠에 관한 중독증 카르테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놉’은 공포 영화 최초의 IMAX 카메라 촬영 작품이다. 이것은 기술 성과에 머물지 않는다. 달빛이 어스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상상해낼 수 있는 코스믹 호러를 시각화하는데 이보다 더 뛰어난 스크린 포맷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놉’은 영화관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점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압도적인 대화면은 하늘과 땅이라는 배경의 ‘광활함’을 극대화한다. 미스터리한 존재 ‘진 재킷’이 등장하는 코스믹 호러 쇼를 위한 무대 구성은 완벽하다. 관객이 영화 속 일부분이 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이 기술적 선택은 장르적 완성도를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가장 거대하고 원초적인 공포 본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 관객들은 이 영화의 독특한 오프닝 시퀀스 관문을 먼저 지나쳐야만 한다.

영화는 전형적인 시트콤 대사의 재잘거림과 함께 시작한다. 이 들뜬 목소리들은 화면 암전과 함께 사그라든다. 그리고 당황스러운 광경이 펼쳐진다.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는 이 비극적인 스튜디오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언뜻 들리는 등산 실종자 뉴스 같은 파편적이면서도 제한된 정보 제공 연출은 영화 내내 계속 이어진다. 덕분에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볼 수 있다. 아울러 여러 가지 해석을 해볼 수 있는 재미도 안겨준다. 

이 퍼즐 맞추기는 등장인물에도 적용된다. 조상 대대로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종사해온 집안 내력을 가진 ‘OJ 헤이우드’(다니엘 칼루야)와 ‘에메랄드 헤이우드’(케케 파머) 남매는 상반된 성격으로 흥미를 유발한다.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은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벌어진 기묘하고도 비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말 목장을 운영하며 가업을 잇고 있는 오빠 OJ는 어눌하게 느껴질 정도로 언변이 뛰어나지 못하다. 대신 신중하고 침착하게 모든 사건에 접근해 나가는 장점이 있다.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이 있으며, 성실하고 현명하다. 또한 유명해지는 것에도 큰 관심이 없다. 다만 묵묵히 말을 키우고 조련하는 가업을 한눈팔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 인생 목표다. 

반면, 아버지와 가장 닮은 성격인 여동생 에메랄드는 에너지가 넘치고 저돌적이며, 성적으로도 자유분방하다. 오빠와는 반대로 화술에 능하고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줬으면 하는 강한 욕망을 품고 있으며, 인플루언서가 되기를 희망한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이 주인공 남매가 만들어내는 드라마에는 또 다른 인물의 스토리가 함께 한다. 오프닝 시퀀스와 연결점을 가진 왕년의 아역 스타 출신 ‘리키 주프 박’(스티븐 연)에 관한 이야기다. 

서부극 테마파크를 운영하며 쇼비즈니스를 이어가고 있는 주프는 하늘 위의 알 수 없는 존재 ‘진 재킷’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 그날 꼿꼿하게 서 있는 신발만큼이나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매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미지의 존재와 교감할 수 있으며, 통제할 수 있다는 위험한 믿음을 품고 있다. 왜냐하면 아역 시절 TV쇼 ‘고디의 집’ 촬영장에서 겪은 두렵고도 놀라운 경험이 그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어서다. 비록 그 사건으로 배우 커리어가 망가졌지만, 죽음조차 빗겨 가는 ‘선택받은 자’라는 자의식은 지금까지 그의 인생 여정을 지탱해온 힘이 돼왔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에는 나훔서 3장 6절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라는 성경 구절이 인용된다. 

이 문장은 대중을 향해 던져지고 소비되는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 소셜미디어 등을 빗대고 있다. 이 감춰진 메타포는 주프의 깜짝쇼를 시작으로 영화 곳곳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처럼 등장하는 주프에 의해 주도되는 이 기묘한 쇼는 뜻밖의 전개로 강렬한 전율을 안긴다. 

이 시퀀스는 결국 주프가 ‘고디의 집’ 스튜디오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가진 또 다른 원숭이에 불과함을 전한다. 물론, 이 ‘구경거리’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소비하는 것은 극장에 앉아있는 관객들이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끊임없이 모호하고 미스터리한 엔터테이닝을 제공한다. 계속 흥미를 돋게 할 또 다른 중독자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콘텐츠를 기록하는 행위 자체에 광적으로 빠져있는 촬영감독 ‘앤틀러스 홀스트’(마이클 윈콧), 순전히 호기심에 사로잡혀 ‘진 재킷’을 쫓는 ‘엔젤’(브랜든 페레아)이 그들이다. 

메타영화적 요소가 되는 이들의 행위는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스펙터클을 담는다. 그런 면에서 19세기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움직이는 말’과 21세기 조던 필의 ‘놉’은 궤를 함께한다. 

이들이 OJ 에메랄드 남매와 함께 만들어내는 모험의 여정과 드라마 속에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대한 러브레터와 함께 신랄한 비평을 담겨있다. 

위험에 직면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주도하는 흑인 카우보이 OJ는 북미 영화계 유색인종의 상징적 캐릭터다. 그는 주프와 달리 길들일 수 없는 것을 경계한다. 그것이 때때로 통제 불가 영역에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OJ는 극 중에서 유일하게 ‘메두사의 머리’ 같은 스펙터클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와 함께 적극적으로 재난을 돌파해나가는 에메랄드는 정반대다. 마지막까지도 세상 모든 이들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이 두 캐릭터는 대부분의 대중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다. 

SF와 공포 그리고 미스터리가 결합한 긴장감 있는 퍼즐 맞추기 스토리텔링은 간혹 느린 템포로 전개된다. 하지만 매력적인 서사는 끝까지 유지된다. 후반부 결국 정체를 드러내는 ‘진 재킷’의 디자인은 천천히 끓어오르던 공포와 맞물려 그로테스크한 코즈믹 호러를 완성한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놉' 스틸. ⓒ유니버설 픽쳐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조던 필 감독은 “‘미지와의 조우’가 이 영화의 맥락과 비전에 영향을 미쳤고, 더불어 다른 세계에서 온 무언가 우리와 함께한다는 느낌을 주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놉’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미지와의 조우’ 뿐만 아니라 ‘죠스’, ‘E.T.’와 닮아있는 많은 지점을 관객들에게 노출한다. (‘놉’과 함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작품들을 감상해본다면 다양한 기시감을 경험할 수 있다.) 아울러 조던 필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는 ‘아키라’의 명장면도 등장하는 등 다양한 작품들의 오마주를 발견할 수 있다.

아서 C. 클라크 원작 드라마 ‘유년기의 끝’이나 ‘에반게리온’ 등도 부분적으로 떠올려 볼 수 있는 ‘놉’은 매력적인 미스터리 공포물이다. 쿠키 영상은 없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 홍보를 패러디한 마지막 컷에는 촌철살인의 유머를 담았다. 또한 캐릭터 네이밍에서도 조던 필 감독의 위트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남에게 관심받는 행위와 스펙터클에 중독되어 있다. 이를 소비하고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반복적으로 탐닉한다. 

이 웨스턴 무비 스타일의 SF 공포물은 콘텐츠에 중독돼있는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볼 수 있는 경험 그리고 꿈속에서나 볼만한 악몽의 순간들을 제공한다. 

영화 ‘놉’을 N차 관람하고 싶어진다면 아마도 그런 면에서 강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놉'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놉'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 제목: 놉(NOPE)
◆ 각본/감독: 조던 필
◆ 출연: 다니엘 칼루야, 케케 파머, 스티븐 연, 마이클 윈콧, 브랜든 페레아
◆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30분
◆ 북미 개봉: 2022년 7월 22일
◆ 국내 개봉: 2022년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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