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온화하고 자세하게 생각을 설명하기 때문에 경청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SR타임스
▲김동호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온화하고 자세하게 생각을 설명하기 때문에 경청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SR타임스

◆ 홍용락 고문이 만난 '시대를 바꾸는 사람들' [9] 30년 경력 공무원에서 세계적인 영화인으로 인정받는 김동호 전 부산 국제영화제위원장

 

김동호 위원장의  ‘청운가 집심재’ 서재는 경기도 퇴촌 팔당호가 눈 아래 조망되는 곳이다.

‘청운당 집심재’는 귀한 구름을 안은 집, 마음을 모으는 서재라는 뜻이라고 김 위원장께서 설명했다. 자리를 잡고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8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가 않아 하니까, 요즘도 일주일에 한 두번 서울 반포의 테니스장에서 고등학교 18년 후배에서 부터 아들친구인 35년 후배들 하고 테니스를 몇 게임씩 즐기고 있다 한다.

인터뷰전에 지인에게 호주에서 영화학으로 유명한 그리피스(Griffith)대학에서 명예영화박사학위를 받고 막 귀국했다는 전언을 들었기 때문에, 축하인사를 드렸드니 무척 쑥스러워 했다. 그 모습이 그 연세에도 소년 같은 수줍음을 띠어 보여서, 순수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인생을 한 순간에 본 듯했다. [편집자 주]

- 30년 영화, 문화 관련 공무원 경력 이후에 영화인이 되었지만, 가장 돋보이고 존경받는 영화인으로 

- 뒤늦게 영화배우로 활약하고, 직접 영화연출 현장도 섭렵하며 영화감독으로 재탄생

- 영화의 행정, 이론 , 현장실무 삼박자를 해박하게 갖춘 전인적 영화인

- 나이 잊고 3, 40대 젊은 영화인들과 친구처럼 교류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영화계 ‘원로형님’

-  능력, 겸손한 인품에다,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격의 없이 대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

 

Q. 호주에서 막 귀국하셔서 여독이 풀리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피스 대학은 호주 브리스번에 있는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대학인데, 위원장님에게 명예영화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부족한 저에게 학위를 수여해 주어 한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학위 수여의 직접적인 이유는 제가 오랫동안 호주의 ‘아시아·태평양 영화상’ 홍보대사로 봉사를 했기 때문에 준 것 같습니다

 

Q. 그렇군요. 위원장님께서는 국내에서도 많은 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조직위원장, 이사장 등의 책임자로 활동을 하시지만, 해외 영화계에서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 뭐 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화계에 30년이상 종사하다 보니까, 아직까지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아시아 영화 진흥기구’고문·말레이시아 국제 영화제 명예회장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Q. 위원장님께서는 젊은 시절 30년 이상 공무원을 하신 분입니다. 사실 영화인으로 출발은 안 하신거 같은데 지금은 한국의 영화계 대부(?)로 불리면서 영화인들로부터 전적인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이 영화인으로 본격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부산 국제 영화제(BIFF) 위원장을 맡고 부터 아닌가요?

==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30여년 공무원으로 문화부 차관도 했고, 또 영화진흥공사 사장도 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더 멀리 찾아 보면 문화공보부에서 영화과장을 할 때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가졌죠.

그러다가 1996년 제가 부산 국제 영화제(BIFF)를 만들면서 집행위원장과 명예집행위원장을 하면서 2017년 떠날 때까지 혼신의 힘을 쏟았고, 또 많은 영화인과 교류하면서 영화제를 국제적인 영화제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얼마전 호주 그리피스(Griffith)대학에서 명예영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교 총장(위원장 사진 왼쪽)과 김동호 위원장(가운데) 이사장(오른쪽)과 사진촬영ⓒSR타임스
▲얼마전 호주 그리피스(Griffith)대학에서 명예영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교 총장(위원장 사진 왼쪽)과 김동호 위원장(가운데) 이사장(오른쪽)과 사진촬영ⓒSR타임스

Q. 부산 국제 영화제(BIFF)는 많은 영화제의 교본이 되었지만, 당시는 한국에서 감히 국제적인 해외 영화제를 한다는 엄두를 못냈을거 같은데, 어떻게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나요?

== 말씀한 대로 당시에 한국에서 해외 영화제를 창설한다는 것은 조금은 위험부담이 있을 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제가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할 때부터 인가 봅니다. 한국영화의 활로를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산업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많은 해외 영화제에 한국영화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 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까, 해외에 나가서 참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해외 영화제를 개최함으로써 한국영화의 콘텐츠 마켓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Q. 그런 상황적인 판단이 있었군요. 하지만, 시작할 때는 어려움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 무슨 일을 하는데 그런 어려움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젊은 영화인들과 생각을 같이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영화인들도 한국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사활을 걸고 노력 했습니다. 실제적으로 한국에서 처음 개최하는 해외 영화제인데 인프라 구축을 제대로 하려면 행정기관의 협조도 중요하지만, 먼저 영화인들이 뭉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기억이 새롭습니다. 일반적으로 해외 영화제 하면 영화작품 상영하고, 레드카펫 등으로 배우들 만나고, 또 작품 마켓시장에서 구입하거나 판매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저는 기본적인 거 플러스 새로운 시도를 영화인들과 해 봤습니다. 그 당시 영화제에서 배우들이 단지 상영관이나 레드카펫에서 거리를 두고 관객들을 만나는 방법을 바꿔서 부산 자갈치시장 등 거리에서 배우와 관객이 직접 만나 식사와 영화얘기를 나누는 흥겨운 축제형식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많은 유명배우들도 영화제 성공을 위해 직접 거리에서 관객을 만나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형식이 이후에도 한국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의 정형이 되어 가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김동호 위원장의 감독 데뷔 단편영화 'JURY(쥬리)' 포스타. 출연배우 안성기, 강수연, 정인기, 일본과 영국배우도 보인다ⓒSR타임스
▲김동호 위원장의 감독 데뷔 단편영화 'JURY(쥬리)' 포스타. 출연배우 안성기, 강수연, 정인기, 일본과 영국배우도 보인다ⓒSR타임스

Q. 그렇게 공들여 만든 부산 국제영화제가 몇 년전 삐끗해서 할 수 없이 위원장님이 구원투수로 나서서 수습한 적이 있다면서요?

== (허허허 웃다가... 한참만에) 제가 안 나서도 수습할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2015년인가요. 세월호때 ‘다이빙 벨’을 소재로 한 영화를 영화제에서 상영하려 했지만, 그 당시 부산시에서는 상영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제에서는 출품하고 상영이 인정된 영화는 상영을 해야 하는게 원칙이죠.

이 과정에서 영화계와 부산시가 대립 하게 되면서 제가 부산시장이 맡고 있던 조직위원장을 대신 맡게 되었습니다. 이 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던 배우 고 강수연님의 도움과 역할이 컸기 때문에 파국을 딛고 무난하게 수습되었습니다.

저는 앞서 얘기한 부산시장을 대신해 2016년과 2017년 조직위원장을 맡아 고 강수연 배우와 많은 영화인들의 협조로 정리를 한 후인 2017년 그 해 부산 국제영화제를 완전히 떠납니다.

 

Q. 고 강수연 배우하고는 친부녀 같은 관계를 유지하셨다면서요? 이 기회에 한번 여쭙고 싶은 것은 공무원 그것도 정무직을 하신 위원장님 입장에서는, 대부분 스타의식이 확실한 유명배우들과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벌써 34년이 지났네요. 먼저 고 강수연 배우하고는 1989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작품의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최우수 여우 주연상을 받으러 같이 다녀 왔습니다.

그 때부터 남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부녀같이 영화와 개인 대소사를 상의하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장례위원장을 맡아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는데, 지금도 가슴 한 구석 먹먹하고 안타깝습니다.

 

Q. 고 강수연 배우가 어떤 배우인지 말씀해 줄 수 있습니까?

== 월드스타인 건 다 아는 얘기고요. 스타로서 도도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기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배우였습니다. 또 인성적으로는 왠만한 남자이상으로 의지가 강하고, 포용력이 커서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습니다.

▲인터뷰 마치고 2층 카페에서 기념사진을 남기자고 김동호위원장이 손수 셀카로 찍은 사진 한 컷ⓒSR타임스
▲인터뷰 마치고 2층 카페에서 기념사진을 남기자고 김동호위원장이 손수 셀카로 찍은 사진 한 컷ⓒSR타임스

Q. 그렇군요. 위원장님도 나이불문하고 배우와 영화스텝을 비롯한 영화인들과 격의 없이 지내기 때문에 따르고 존경하는 영화인이 많다고 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 꼭 그렇기만 하겠습니까(겸연쩍어 하다가...) 저는 영화계에서 30년 이상 어떤 배우와 스텝들 하고도 친구같이 친하게 지냅니다. 나이와 지위 불문하고 나 스스로 친구라고 생각하고 30년 이상을 그렇게 친하게 지내니까 많은 영화인들과 친교를 유지하는 거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안성기, 정우성, 조인성, 전도연 같은 스타뿐만 아니라, 조명의 막내라도 같이 밥먹자고 부르면 가서 먹습니다. 이러니까 많은 영화인들이 편하게 대해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노력하는 것을 굳이 말하라고 하면, 저는 누구한테도 그렇게 하지만 영화인들 누구하고도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말을 하지 않고 존대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정도입니다.

 

Q. 이렇게 영화인들과 깊은 인간적 교류를 가지고 사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제 경력은 아시다시피 공무원으로서 30여년을 보냈고, 영화인으로서 30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공직생활을 할 때 저와 교류하던 분들은 차관까지 한 사람이 뭐 그렇게 영화인이 되려고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세월을 공직생활 못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영화 조연배우로 다섯편을 출연도 했습니다. 그것도 외국감독영화 한편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우선 임권택 감독 작품 '달빛길어올리기' 에서는 한지 만드는 회사 사장 역할로 꽤 비중 있는 역할을 했고요, 조선족 장률 감독이 만든 '이리'라는 영화에서는 전북 이리역 폭발사고 30년후에 이리를 찿는 상황설정 영화입니다. 여기서도 역할이 분명한 조연배우로 출연했습니다.

또 프랑스 클레이 드니이 여자감독이 만든 '개입자'에서는 선박회사 사장으로 나름 열연을 한 배우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Q. 전에 누가 그런 얘기를 하기에, 위원장님의 영화출연을 카메오(예기치 않는 상황에서 유명배우가 한번 출연하는 역할) 출연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참 영화감독도 정식으로 했다면서요?

== 네, 영화를 사랑하기에 2013년 24분짜리 단편영화 'Jury'(쥬리)로 정식 감독 데뷔를 했습니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다섯분을 통해 일어나는 갈등상황을 다룬 영화입니다. 시나리오도 내가 직접 썼습니다.

주요 출연배우는 안성기, 강수연, 정인기씨와 일본 여배우와 영국배우 한 분이 출연했습니다. 운이 좋아서인지, 이 작품은 제10회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베를린영화제도 초청 상영되었습니다.

▲김동호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온화하고 자세하게 생각을 설명하기 때문에 경청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SR타임스
▲김동호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온화하고 자세하게 생각을 설명하기 때문에 경청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SR타임스

Q.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일 거 같은데, 영화감독으로 연출도 하시고, 또 배우 출연까지 하셨다니 정말로 영화현장을 다 소화하셨군요.

이번에는 조금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동의를 얻고) 사실 영화계가 이념 문제에 있어서 좌편향 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들이 많습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 먼저 영화계 전반적으로 좌편향 되어 있다는 인식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영화계의 직능협회들 중 단체로 정당활동을 하는 단체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화계를 정치집단체로 인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 같습니다.

사실 문화예술분야 즉 문학, 영화 등 분야에 종사하는 문화예술가들은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먼저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창조할 수 있는 사고와 작업과정을 가집니다.

또, 우리는 이런 점에서 문화예술분야의 신선한 창의성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혹시 일반 국민들 가운데 이런 점들이 정치적으로 좌파이념을 추구하는 사람과 유사하다고 속단해서 문화예술분야 즉 영화계도 좌파이념이 지배한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Q. 하지만, 일부 영화인 중에는 좌파정당과 같이 정치행동을 하면서 정당활동도 상당히 깊이 하는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점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 개개인의 정치성향에 따라 정치활동을 하는 영화인들이 일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배우라는 유명세를 가지고 자신의 정치영역을 확대하려는 몇몇 영화인들의 개인적인 활동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인들의 직능에 따른 단체적으로 정치행동을 하는 것은 아직도 영화계에서 보이는게 없지 않습니까. 국민들께서 이 부분을 면밀하게 구분해서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3층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굳이 2층으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대접한다.ⓒSR타임스
▲3층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굳이 2층으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대접한다.ⓒSR타임스

Q. (영화계 전망에 대해 질문 나아가겠습니다)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극장영화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한국영화계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등으로 결합한 새로운 영화제작환경이 대두하면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 앞질러 얘기하면 극장영화와 OTT제작환경과 결합한 영화제작물은 공존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은 넷플릭스 제작유형인 ‘오징어게임’ 등이 새롭게 영화계에서 화제가 되자, 앞으로는 그와 같은 유형이 영화계의 주류가 될 거로 예측합니다.

그렇지만, 그 같은 현상은 코로나 시대라는 한계상황에서 일어난 현상일 수 있습니다. ‘위드코로나’가 된 지금 넷플릭스 관객이 다시 극장 영화로 돌아 오고 있습니다.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돌파 했고요. ‘이순신’을 만든 김한민 감독의 '한산'도 10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박찬욱감독의 작품성 위주의 작품인 '헤어질 결심'도 250만 관객을 동원하는 것으로 보아 극장영화가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오판이 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든 예가 사회와 시대적 환경에 따라 극장영화의 선호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영화제도 또 활성화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몇 년전 부터 강릉 국제영화제 이사장을 맡아 부산국제영화제와 맞먹는 성공 조짐을 보여 줬지 않습니까? 잘 되어 가십니까?

== 유감스럽게도 강릉국제영화제는 호주에서 오자마자 이사회를 열고 법인체만 남기고 잠정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못지않은 속도로 발전을 예약하고 노력중이었는데, 선거를 통해 시장이 바뀌니까 전임 시장이 기획한 영화제여서 현 시장 측에서 폐지를 결정 내린거 같아 아쉽습니다.

 

Q. 아쉽네요.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면 중단된 상태니까, 속개 되리라 기대합니다. 살아오면서 위원장님은 인생에서부터 시대를 바꿔 오셨습니다. 더구나 부산 영화제 같은 경우는 영화를 가지고 나라와 국민들의 의식을 바꿨습니다.위원장님이 가진 어떤 점이 이렇게 시대를 바꿔가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주변에서는 저에 대해서 몇가지 얘기를 합니다.

우선 성격이 온화하다. 또 일을 할 때는 남들이 피하는 일도 집념과 끈기를 가지고 한다. 이 외에 남들과 친화력을 앞세워 일을 한다. 이렇게 칭찬을 해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저는 공직생활 30년, 영화 34년을 어느 쪽도 다 만족하고 보람을 가집니다. 주변에서는 남들이 못하는걸 다 이뤘으니까 그렇게 말한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는 사람에게는 누구한테나 기회가 다양하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연히 찾아올 수도 있고, 또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자리와 기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시대를 바꾸는 성취가 있을 수도 있고, 또 보람도 있으며, 큰 실패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홍용락 논설고문
▲ⓒ홍용락 논설고문

(3층 서재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피곤할 텐데도 굳이 2층카페에서 차 한잔을 권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래층 입구까지 와서 배웅까지 하면서 선약 때문에 식사를 같이 못함을 거듭 양해를 구함에 연하자로서 몸둘 바를 모르는 인터뷰가 되었다)

 

 

[대담=홍용락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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