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에스알 타임스) 전근홍 기자] 역사적인 규모의 횡령 사건을 일으킨 우리은행 직원 형제에 대한 1심 판결이 지난달 30일 내려졌다. 우리은행 직원 전 씨는 징역 13년을, 동생은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다. 추징금은 323억8,000만원으로 결정됐다. 이들은 지난 2012년부터 10여년에 걸쳐 7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빼돌리고 주가지수옵션 거래 등 개인적인 투자에 이용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추가로 횡령과 은닉 혐의가 발견됐다면서 변론재개를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당초 횡령액인 614억원 가량에 대한 부분만 판단해 형을 선고했다. 93억원 가량을 회수해야 한다는 검찰 의견에 기존 혐의와 방법·시기 등이 달라 ‘포괄일죄’(죄질이 동일하고 행위의 계속성이 있는 경우)로 볼 수 없다고 재판부가 선을 그은 것이다. 차액 부분 등에 대한 환수 조치는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

◆ ‘가르쳐 주고 싶은’ 상대가 감복할 ‘사과’의 기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은행을 이용할 때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시중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NH농협은행 등) 전체로 불신(不信)의 불길이 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는 이원덕 행장은 횡령 사건이 터진 직후, 지난 5월 금융감독원장과 은행장 간담회가 열리는 은행회관 로비에서 기자의 질문에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객의 신뢰 회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횡령 당시 회계담당자였던 점과 관련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단순히 “철저한 진실규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협조를 다 하도록 하겠다”는 말 뿐이었다.

사과는 형식이 필요 없다. 가감 없이 드러낼 때 진정성이 생긴다. 잘못한 부분을 명확하게 고백해야 한다. 쏟아지는 질책에 대해 숨긴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성실한 자세는 필수다. 어렵고 힘들다는 감정이 생겨도 참아야 한다.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당연한 책무(責務)다.

솔직하게 드러낸 경우, 추가적인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생기는 질타의 날카로움은 금세 무뎌진다. 숨길수록 의구심 섞인 눈초리는 더욱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은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 피력(披瀝)이다. 어물쩍 넘기려 한다는 인상을 지우고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면 말이다.

‘입찬소리는 무덤 앞에서 하라’는 속담이 있다. 섣부른 장담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행장으로서 사과해야 한다면, ‘책임’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게 생겼는데, 왜 책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인가.

고객이 어떤 것을 보고 싶을지 생각해야 한다. 책임을 명분으로 조직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정화작업을 고객은 기대할 것이다. 두 번은 없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야금야금’ 수백억을 횡령한 직원이 있는 은행에 돈을 맡길 고객은, 단언컨대 없다.

횡령이 최초 벌어진 2012년부터 10년간 우리은행은 물론 금융당국, 외부감사 책임 등을 맡은 회계법인 모두 눈을 감았다. 그 사이 우리은행 수장만 5번 바뀌었다.

◆ 어설픈 내부 통제, 책임지는 자(者)는 ‘부재중’

다시 짚어보자. 우리은행 본점 기업개선부에서 근무하던 주범 전 씨는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614억원을 횡령했다. 횡령액 일체는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전 불발과 관련해 이란 ‘다야니 가문’이 제기했던 국제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하면서 이란에 물어줘야 하는 배상금 중 일부였다. 미국의 이란 제재로 배상금을 송금할 수 없게 되자 매각 주관사인 우리은행이 보관했던 금액이다.

핵심은 책임이다. 이번 횡령 사건과 관련해 경영진에 대한 문책은커녕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형식적인 사과만 있을 뿐,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다뤄지는 모습이다. 10년간 이뤄진 횡령엔 내부통제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는 것을 잊은 듯하다.

횡령 사건을 두고 내부통제 미흡을 지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십억에서 수백억씩 외부로 송금하는데, 수기(手記) 방식으로 문서를 조작해도 아무런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 파견을 명분으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단결근을 해도 제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속칭 ‘신의 직장’이라는 비난을 듣기에 충분한 사실이다. 누구도 의심치 않을 허술한 관행이 횡령을 자행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우리은행이라는 상호를 곱씹어 보자. ‘우리’라는 단어는 어떤 대상이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낼 때 쓴다. 친밀함. 신뢰가 바탕이 될 때 형성되는 감정이다. 무너진 신뢰회복의 전제조건은 책임지는 모습이다.

책임에 있어서 우리은행을 이끌고 있는 수장은 여전히 부재중이다. ‘우리’라는 상호가 아깝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혼자’만이 아니다.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