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에스알 타임스) 전근홍 기자] # 1. “(구두계약으로) 납품하기로 했는데, ‘K모 전 농협중앙회장’이 조합장을 역임하던 시절 자신이 알던 지역 회사로 전속 계약을 바꿨어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작성하겠다고 항의하니까 전체 납품대수에서 일부를 떼어줬어요.”- 익명 제보자 S모 씨

# 2. “농협중앙회가 대주주로 있는 G홈쇼핑에 방송 및 판매 대행업체로 참여하고 싶어요. 수의계약에서 입찰방식으로 바뀌었는데, 농협중앙회장 입김으로 사업권을 따고 싶어요.”- 익명 제보자 M모 씨

# 3.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돈 안 쓴 사람이 있나요? 나도 썼고, L모 후보, K모 후보, Y모 후보도 썼지요. (위탁선거법 상으로) 공소시효 6개월도 지났는데 문제될 것 없습니다.”- 2020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C모 씨

농협을 둘러싼 비위사실을 제보 받거나 직접 인터뷰하면서 듣게 된 발언들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계약을 따내고 싶은 욕심에서 나온 일방의 음해성 주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발언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에게 직접 듣게 된 자기고백으로 선거 과정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것은 위 발언들의 연결고리다.

기자는 2020년 1월에 있었던 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불편한 돈의 흐름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 293명의 대의원 투표로 치러진 당시 선거에서 지지호소를 명목으로 금품살포가 이뤄졌는데, 해당 자금의 출처는 농협 내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성 ‘스폰’이라는 주장도 잇따랐다.

회장 당선 후 스폰을 받은 기업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태가 자행됐을 수도 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대의원 표심을 잡기 위한 금품살포, 선거 자금 지원, 당선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은 사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논리적 모순점을 눈 씻고 찾기 힘든 지경이다. 결국 연결고리는 회장이 가진 막강한 권한으로 볼 수도 있다. 농협중앙회장이 가진 권한이 불쾌함을 낳는 발언과 사실들을 목도(目睹)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농협중앙회장의 막강한 권한, 끝없는 폐단의 원인

현 시점에서 농협중앙회장은 임기 4년 단임제에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200만명이 넘는 농협 조합원을 아우르고, 28개 계열사와 12만명의 임직원을 통솔한다. 농협중앙회 산하 계열사 대표 인사권과 예산권, 감사권을 갖고 농업경제와 금융사업 등 경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 ‘농민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러나 회장 선거가 대의원 간선제인 탓에 농업계 현장의 관심을 끌지 못할 뿐 아니라, 후보의 됨됨이나 농업 현안에 대한 견해·공약은 뒷전으로 밀린 채 지역 구도에 따른 판세와 ‘이합집산(離合集散)’ 소문만 무성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 법 개정, 무늬만 ‘직선제’?…급부상하는 회장 연임론

향후 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부턴 ‘직선제’가 도입된다. 하지만 ‘부가 의결권’이 덧붙여지면서 반쪽짜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부가 의결권은 조합원 수 3,000명 이상의 조합엔 투표권을 2개 주는 것을 말한다. 전체 1,118명의 조합장 중 145명이 중앙회장 선거에서 2표를 행사할 수 있다. 보통 말하는 직선제와는 다르다. 대형 도시농협의 목소리가 커질 것은 자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농협법에 따라 중앙회장은 연임이 불가능한데, 재차 회장직을 수행하도록 법 개정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부가의결권의 도입으로, 전체 조합원 의견을 대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연임론에 대한 비난 여론도 분명하다.

지난 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가 치러졌을 당시 농협에 ‘새로움’이라는 바람이 불긴 했다. 그러나 기우였을까. 농협이라는 나무는 그대로인데 거센 바람 때문에 새롭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2017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범(汎)농협에서 임직원에 의해 발생한 횡령 등 금융사고는 총 245건, 피해액은 608억원이다.

“돈을 내어줄 땐 실무자가 심사하잖아요. (은행도 아닌데) 여신 관련 법령을 외우는 것도 아니고 금융전문가도 아닌데, 당국 사람들이 농협을 너무 모르는 것 같네요.” 부당대출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한 ‘단위농협’ 조합장의 발언이다. 그는 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왜 이 발언이 씁쓸할까. 농협중앙회장을 하겠다는 자(者)의 능력과 품격을 엿봐서는 아닐까. 

농민이 시름하는 소리를 정작 농협은 듣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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