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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초대석] <13> 전 농구 국가대표 장신센터 '한기범 희망나눔' 회장

기사승인 2022.12.0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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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 가족과 사회에 진 빚을 갚을 기회를 운명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가겠다고 밝히는 한기범 회장ⓒSR타임스

◆ 홍용락 고문이 만난 '시대를 바꾸는 사람들' [13] 205㎝ 최초 전 농구 국가대표 장신센터→'사회적 약자 돕기' 제2의 인생 사는 한기범 희망나눔 회장

한기범 회장을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 장충체육관 근처 (사)한기범희망나눔 사무실이었다. 

찾아가면서 장충 체육관에서 그 옛날 ‘농구대잔치’대회와 국가대표 농구경기가 많이 열렸기 때문에, 젊은날의 영광을 잊지 못해 아직도 사무실을 그 근처로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찾은 사무실은 장충체육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여서 근거없이 예측한 것을 나 자신이 쑥쓰러웠다. 

약속한 시간에 사무실에서 만나는 순간, 178센티미터 신장을 가진 대담자도 한참 쳐다 볼 수 밖에 없었지만 큰 신장의 한 회장이 웃음으로 맞아줬다.

15평 남짓한 공간에 직원 2명, 인턴직원 2명, 자원봉사자 몇 분이 근무하고, 별도로 1평 반 남짓한 공간을 분리한 회장 사무실에서 인터뷰가 시작 되었다.

비좁은 공간에 다리를 접고 대담하는 한 회장을 보면서 처음에는 사회와 타인에게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좀 더 좋은 환경 속에 생활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지만, 원체 사람 좋은 한 회장과의 인터뷰여서 편안한 진행이 되었다. [편집자 주]

- 농구계서 2미터가 넘는 장신센터임에도 불구, 국내 최초 기술과 신장을 겸비한 국가대표 선수로 인정받아 

- 선천성 심장병 가진 분으로 가족에 대한 빚과 사회적 빚을 갚기 위해 운명적, 사회적 약자 돌보미로 전환

- 선수들 혹독하게 체벌을 가하는 등의 지도력(?)이 없다는 조언 받고 보장된 지도자 길을 미련없이 접어 

- 본인이 잘 아는 농구와 접목해 심장병어린이, 다문화 가정 자녀, 정식 농구선수가 되지 못했지만 농구를 잘하는 청소년들의 기를 북돋우는 곳서 보람  

- 방송 등 미디어 출연에 호기심과 재미 가지지만, 미디어 노출도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목적 두고 자기를 알리는 용도로 활용

▲코로나 때도 언택트로 심장병 어린이 돕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한 회장은, 운동선수출신이기 때문에추진력은 쉴 줄 모른다고 한다. 사진은 한국화교화인연합총회와 나눔협약식을 갖고 있는 모습.ⓒSR타임스

Q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편한 농구 지도자 길을 택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돕는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게 되었나요? 

 

== 저도 심장병 환자였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키 크고 마른 사람들한테 나타나는 ‘마르판 증후군’을 제가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저희 아버지 키가 190센티미터 정도였습니다. 유전확률이 약 50% 정도이기 때문에 3남2녀 형제자매 중 3명이 이 병을 선천적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병으로 2003년과 2008년에 두 번 수술을 받았습니다.

첫번째 수술은, 30세 정도에 이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동생을 보고 나서, 유전자 확인을 한 결과 나한테도 이 병이 잠복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동생의 수술을 통해 내가 지병을 확인하고 예방적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먼저 간 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빚을 지고 사는 심정입니다.

두번째 수술은, 2008년쯤, 제가 수술 받을 때 돈이 없어 ‘한국심장재단’ 지원으로 수술 받을 수 있었습니다.

 

Q. 그래서 가족에 진 빚과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 2006년 농구선수에서 은퇴하자마자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시작한 건가요?

 

== 그렇게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농구 지도자 생활을 원했죠. 

중앙대 농구코치로 있을 때 였어요. 가까운 선배 한 분이 심각하게 저의 인생 코칭을 해 줬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지도자 생활이나, 대학코치로 있을 때나 유심히 지켜 본 결과를 얘기해 줬습니다.

그 당시는 모든 운동선수들을 지도하는 지도자 덕목은 무조건 엄한 지도였습니다. 필요하면 체벌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체육종목에서 우승하려면, 선수들을 얼마나 많이 가혹하게 체벌하느냐에 따라 우승 향방이 결정된다고 하는 속설이 난무하던 체육계 풍토였지요.

인생 코칭을 해 준 선배는 저는 그런 능력(?)이 모자라 지도자로서 장악력과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ㅎㅎㅎ 

▲농구선수시절 중앙대학교와 기아산업에서 수 십회 우승을 했으며, 부동의 국가대표 센터로서 활약을 해서 훈장까지 받았기 때문에 선수생활은 대 만족이라고 한다ⓒSR타임스

Q. 그 얘기를 듣고 지도자 길을 그만 뒀다는 얘기입니까?

 

== 믿기 힘들지만 그런 셈이죠. 그렇다고 곧장 심장병 어린이 돕기 운동 같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지도자 생활이 맞지 않다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만두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구선수 시절 못지않게 저를 많은 분들이 기억해줬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선수 때 인기가 조금은 남아 있을 시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저의 이름을 등에 업고 홈쇼핑에서 저의 신체적 특징을 살리는 사업을 해 보자고 제안을 해 왔습니다.

제가 큰 키를 가졌기 때문에 키 크는 건강식품을 제가 앞장서서 같이 팔아 보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품을 확인해 보니까, 의학적으로도 신뢰성이 어느 정도 있어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키가 너무 커서 고민인데, 성장기 자녀들 키 때문에 고민을 하는 부모님들이 많이 있었나 봅니다.

물건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래서 대박 났다고 기대를 많이 가지고, 그 다음 홈쇼핑 사업을 분주히 구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헛물을 켰는지... 시간이 경과한 후, 홈쇼핑 채널에서 결산을 해서 이익 분배금을 나눠 줬는데, 쉬운 얘기로 제가 받은 것은 '빈 손' 이였지요. 

정산 결과 홈쇼핑 전파료 등의 부대비용 을 계산을 하지 못한 불찰이 있었죠.

이 외에도 한 때 제가 탈모가 심해서 탈모삼프를 홈쇼핑에 통해 사업을 하려다 그 일 때문에 중도하차 했습니다.

사업자와 탈모삼프를 준비해서 홈 쇼핑를 통해 판매하는 사업계획을 구상하다, 앞에서 말한 키 크는 건강식품으로 큰 손해를 봤기 때문에 중단하는 실패도 겪었습니다.

 

Q. (그랬었군요) 농구지도자와 사업을 하다가 쓴 맛을 보았군요. 지금 희망나눔회의 주요 활동이 심장병 어린이 돕기, 다문화 자녀돕기, 농구꿈나무 지원이 중요 활동인데,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 모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장병 어린이 돕기가 우리 희망나눔회가 먼저 시작한 활동이어서 더 발전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제가 심장병 수술을 받았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제 입장에서도 심장병 환우들의 심정도 더 잘 알 수 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앞서 하늘나라로 간 동생 때문에 예방적 수술도 했고, 또 2차수술 때는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사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이중의 빚을 진 입장입니다.

그래서, 농구 지도자와 사업실패 후 이 두 가지 빚을 갚기 위해 어쩌면 운명적으로 제가 이 길을 택할 수도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어린이들을 돕다 보니까, 우리 사회 그늘진 아이들의 한 분야가 다문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분야 영역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또, 농구지도자 길을 계속 가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농구에 관심과 재질을 가지고 있지만 제도권에서 선수생활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어린이3ⅹ3농구대회도 1년에 4회 이상 개최했습니다.  

▲10년이 훨씬 넘게 매년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스타와 함께하는 희망 농구 자선경기’ 기념사진들 앞에 선 한기범 회장ⓒSR타임스

Q. 이 단체를 앞장서 끌고 나가는데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떤것인지요?

 

== 짐작하시겠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가장 힘든 점입니다. 제가 사업을 해서 여기에 보탬을 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십시일반 이 뜻에 동참하시는 개인 후원금,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취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의정부시와 같은 지자체나 강원교육청, IBK기업은행 같은 행사 취지에 동참하는 국공립기관도 있습니다.

우리도 취지만 걸고 마냥 기다리는게 아니라 공모사업 등에 적극 신청해서 우리의 뜻을 전하고 공감받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농구를 했기 때문에 농구계 선후배와 농구를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재능기부 대회가 성황을 이룹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업을 하는데, 사무실 운영비를 제외하고 적어도 1년에 6억~7억원이상 예산이 소요 됩니다.

재능기부로 참여해 주는 운동선수들이나 연예인들의 기부 몫은 예외로 하고 아이들과 활동비에만 이 정도가 든다는 것입니다.

직원들도 다 열정페이 받고 일하죠. 저도 여기서는 한 푼도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400~500명의 정기 후원자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 초기부터 허재, 김유택, 하승진 등 스타 플레이어 출신 농구 선수들과 이상윤,서지석,김태우, 박재민,쇼리,박광재 등 농구를 좋아하는 많은 연예인들과 타이거JK,박상민등 공연으로 참여가 없었으면 단 1년도 유지될 수 없는게 이런 일입니다. 모두가 봉사와 희생 속에서만 진행될 수 있습니다.

 

Q. 앞으로 이 희망나눔회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을 더 하고 싶습니까?

 

== 취지가 좋아서, 막연하게 잘 이끌고 나가겠다고 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좋은 취지에 금전적으로, 재능으로 현장에서 직접 같이 해 주신 분들의 헌신에 대해 잘 관리하는 것이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분들의 봉사와 금전에 대해 한 푼도 빼놓지 않고 ‘정확’하게 홈페이지에 회계처리를 해놓습니다. 금전과 재능 봉사에 대해 정확하게 집행하고 알리는 것도 그 분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노력도 경제적인 안정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효적인 성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를 겪는 동안 방역단체의 방침에 맞춰 마스크를 쓰면서도 행사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 후원금 조달이 여의치 않아 행사가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회원 확대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또 우리 단체 자체적인 후원 사업을 계속 발굴하겠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제가 잘할 수 있는, 전국의 학생 농구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농구코칭사이트’ 250개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큰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망하지 않고 단체차원에서 후원금 확대 사업도 계속 발굴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건이 되면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지역의 빈민촌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농구코칭 농구교실을 여는 기회도 자주 가져 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문화 어린이들 돕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추진 해야겠다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때도 언택트로 심장병 어린이 돕기 프로젝트를 한 한 회장은, 운동선수출신이기 때문에 추진력은 쉴 줄 모른다고 한다ⓒSR타임스

Q. 다문화 아이들 돕기와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농구코칭교실이 시너지 효과가 있는 계획 같지만, 어떻게 연결될 지가 확실하게 와 닿지 않네요?

 

== 다문화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나라 방문 프로그램이 있어 필리핀을 간 적이 있습니다. 공항에서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 부터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자존감’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에 도착해서 ‘문화자랑하기’ ‘외갓집 친척 만나기’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자기 정체성에 대해 긍지를 갖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울에서도 비슷한 캠프를 진행해 봤습니다. ‘다문화 농구선수들과의 만남’ ‘한국요리 경연대회’등의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이들의 자존감으로 연결되는 것도 같이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도 농구교실을 통해 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는 꿈을 부여하는 기회로 확대하고 싶습니다.

 

Q. 지금 열심히 하는 희망나눔회 외에도 가끔 방송출연도 하는데, 이렇게 힘든 일을 하기보다는방송 출연에 전념해 볼 생각은 안 했는지요?

 

== 제가 가진 신체적인 특징이 시청자들에게 호기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송뿐만 아니라, 광고도 찍었고, 영화, 시트콤 까지도 했습니다.

운동선수로서 제가 방송, 광고, 영화 본류에 본격적으로 출연한 것은 시초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요즈음 많은 운동선수 출신들은 예능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게 일반화 되어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선두주자 였습니다. (허허) 저도 출연하는 것이 적은 재미도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 재능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고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나의 신체적 특징을 프로그램에서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도 보여주기 때문에 이 때까지 자주 나갔고, 앞으로 섭외가 들어오면 출연을 마다 하지 않겠습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에게 농구를 통해 건강한 정신을 가지게 하는데도 관심을 가져 3ⅹ3 농구대회를 1년에 몇 차례씩 ‘한기범희망나눔’ 주최로 치룬다ⓒSR타임스

Q. (네-----) 그럼 앞으로 방송에 매진할 기회를 갖는다는 얘기인가요?

 

== 제 얘기를 잘 이해해 보세요. 저는 희망나눔회를 시작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흔히들 한가지 분야에 10년을 종사하면 그 분야에 철학이 분명하게 생긴다고 하잖아요.

앞으로 내가 저에게 기대하는 것은, 희망나눔회를 더욱 알차게 꾸려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방송출연이 되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내가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면, 희망나눔회를 앞장서 꾸려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바라건데 희망나눔회 프로그램과 행사에 관련된 방송 출연이 되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잠깐 얼굴 비치는 출연 보다, 행사가 의미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나 교양 같은 장르로 확대되면 더 좋을 듯합니다.

 

Q. 스타농구선수 출신으로서 농구지도자도 아니고, 또 방송프로그램을 누비는 길로도 가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새로운 길을 사명감을 가지고 가는데 만족 하십니까?.

 

 

== 저는 운동선수를 하는 기간에 정말 행운만 있는 '꽃길'이었습니다. 농구 경기는 다섯 명이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 셋만 있으면 무조건 이긴다고 합니다.

제가 농구했던 중앙대학부터 실업팀인 기아산업까지는 1년 후배 김유택, 그 후배의 허재까지 같이 했기 때문에 대학부터 실업팀에 이르기까지 대회만 나가면 무조건 이기고 우승도 1년에 5, 6번씩 전체 몇십번을 해 봤습니다.

국가대표도 원없이 해 봤고요.

1995년 35살에 고질적인 무릎과 발목부상으로 은퇴하면서도 남들은 1996년 프로경기가 개최되면서 못 뛴게 아쉽지 않냐고 합니다. 저는 그 어떤 것도 운동선수로서 할 것 다 해 봤기 때문에 여한이 없습니다.

제가 사회적 약자를 돕는 희망나눔회에 인생이 귀착이 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 같이 저한테 주어진 운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퇴 후에, 지도자의 길도, 또 개인 사업도 여의치 않는 가운데서 선천적인 병을 수술하게 되면서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자연적으로 가족들에게 진 빚과 사회적으로 진 빚을 갚겠다고 다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한기범희망나눔’ 취지에 공감해 의향서로 후원을 아끼지 않는 기업, 단체, 지자체 및 스타 농구선수 및 연예인들의 재능기부에 무한감사 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가족과 함께 한라산 등반 여행을 함께한 한기범 희망나눔ⓒSR타임스

Q.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이 시대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앞에서 말씀 드린 것 처럼 제가 거창하게 시대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어진 여건 속에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운동선수 출신들이 갈 수 있는 스포츠지도자나 방송출연 등의 보편적인 길보다 나를 원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봉사하는 길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이죠.

이 노력이 사회적으로 볼 때는 편한 길을 가지 않고 어려운 길을 개척하는 길로 봐주기 때문에 새롭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새롭게 보이는 것도 주변에서 많이 도와 주기 때문에 제가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 해 보십시요. 운동선수들은 운동할 때는 폭넓은 공부를 할 기회도 없습니다. 또,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기회도 쉽지 않습니다.

▲한기범 회장과 인터뷰 후 사무실에서 파이팅으로 격려하는 홍용락고문ⓒSR타임스

그래서 나도 농구지도자 길도, 또 방송 출연의 길도 그 어떤 선수들 보다 일찍 노크해 봤지 않습니까?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길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침 시대적 분위기도 같이 해 주었습니다.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많은 후원자와 후원 기관들이 같이해 줬기 때문에 오늘에 제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조금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 길도 쉽게 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맘으로 지냅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선수 출신으로 일반인에 비해 조금 더 있다는 추진력을 바탕으로 노력했다는 사실입니다

끝까지 많이 도와주셔서 나와 우리 단체가 지치지 않고 이 시대를 바꾸는 동력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도록 계속적으로 격려 부탁드립니다.

▲ⓒ홍용락 논설고문

(인터뷰 내내 한기범 회장은 의도적으로 겸손 하려는 노력은 없다. 그렇다고 뭔가 상대방에게 배려하려고 애써지도 않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평범하게 하는 언행에서 겸손하고 선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남을 위해 살 수 있는 사람은 타고난 선함을 간직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어느 책 에서 본듯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홍용락 논설고문 hyrack@hanmail.net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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