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석재 채취장에서 토사 붕괴로 3명이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이 법이 적용된 첫 번째 사건이다. ⓒMBC 화면 캡처 
▲지난해 1월 29일 경기도 양주시 삼표산업 석재 채취장에서 토사 붕괴로 3명이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이 법이 적용된 첫 번째 사건이다. ⓒMBC 화면 캡처 

- 정부·경영계 “법규정 모호”…노동계 “무력화 시도 중단”

[SRT(에스알 타임스) 이승열 기자] 지난 16일 부산 중구 남포동의 한 주상복합건물 신축 현장에서 벽돌 더미가 추락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숨진 사람은 해당 건물 옥상의 조경공사를 맡은 업체 직원이었고, 다친 사람 2명은 행인이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라고 판단해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15일에는 경남 밀양 한국카본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6명이 다쳤고, 이 중 2명이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고용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업체를 조사하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 19일 ‘2022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중대재해는 611건, 숨진 근로자는 644명이다. 지난해 중대재해 사망자는 전년 683명(665건)보다 39명(5.7%) 적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하면 지난해 중대재해 사망자는 256명(230건)으로 전년 248명(234건)보다 8명(3.2%) 많다.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의 지난해 사망자는 388명(381건)으로 전년 435명(431건)보다 47명(10.8%) 줄었다.

◆중대산재 발생 시 사업주·경영책임자 처벌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묻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 예방과 종사자의 생명·신체 보호를 위한 기업의 안전보건조치 강화와 안전투자 확대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처벌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했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거나, 화학적 유해요인 등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자가 3명 이상 발생한 산업재해를 뜻한다. 

사업주·경영책임자는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진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사망자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경영책임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논란 끊이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 이후 현장 안전관리에 한층 더 경각심을 높이고 산업안전에 관한 사항을 기업경영의 핵심과제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다. 

하지만 법의 처벌규정이 모호하고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은 제정 이후 끊이지 않았다. 경영책임자의 범위와 의무규정이 모호하고 법 내용 자체에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실제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는 기여하지 못한 채 기업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기업인의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경영계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지난 13일 발표한 ‘중대산업재해 단계별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예방을 통한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를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산업현장에서는 CEO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위한 법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법 시행 후 1년이 경과됐음에도 법의 모호성으로 인해 막막하다는 기업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시각도 비슷하다. 고용부는 지난해 11월 30일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처벌 강화 대신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춰 기업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개선하는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당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처벌을 강화했어도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 사고사망자 수)은 8년째 정체돼 있다”며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와 처벌보다는 스스로 규율하는 예방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본격적으로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11일 고용노동부 주관으로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한 것. TF는 6월까지 약 5개월간 ▲처벌요건 명확화 ▲제재방식 개선 ▲체계 정비 등 중대재해처벌법 개선방안을 집중 논의하게 된다. 

TF 발족식에서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줄어들고 있지 않은 것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므로, 입법 취지와 달리 법리적, 집행과정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법 취지가 현장에서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면서 “2024년 50인 미만 기업 적용 확대를 앞둔 시점에서 법 적용 준비상황, 현실적인 문제점 및 대책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법 무력화 시도 반발

노동계는 “법이 현장에 정착되고 감축 효과로 이어지기까지 긴 호흡이 필요하다”면서 정부·경영계가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1일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 발족 이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의무가 모호하고 처벌 중심이어서 중대재해 감축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법을 개정하면 해결되는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정부와 경영계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이 제정되고 시행되기까지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어떠한 의무를 다했는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전담 조직을 두고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배정하고 노동자 의견을 수렴하는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했는가? 그럼에도 중대재해 감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민주노총은 앞서 지난해 11월 30일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한 입장문에서는 “위험성평가와 자기규율 예방체계 중심의 로드맵은 기업 처벌과 감독은 완화하고 노동자 의무만 강화한 대책”이라며 “▲위험작업 중지권 ▲노동자 참여 실질 보장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 근본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중대재해 감축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고 내년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법 적용 확대를 앞두고 있는 만큼 법을 강화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어디로 가나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추진과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작업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노동계의 반발이 거센 데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대응에 나서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고용노동부가 TF를 발족한 다음날인 지난 12일 산업재해예방 TF를 출범시켰다. TF 단장은 노동계 출신인 이수진 의원이 맡게 됐다. TF는 ▲중대재해·현장 방문 및 대응 ▲산재예방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연구 및 입법활동 등을 수행한다. 

TF 출범식에서 이수진 TF 단장은 “최근 SPC‧코레일 중대재해 등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이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은폐와 변명에만 급급하다”면서 “급기야 자기규율예방을 핵심으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으로 기업의 산업재해 책임을 노골적으로 경감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만큼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향방은 사법부의 판단도 변수다. 그간 경영계와 노동계는 중대재해 발생 1호 사건(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고), 기소 1호 사건(두성산업 집단 독성간염)의 결과에 촉각을 기울여 왔다. 모호성으로 인한 중대재해처벌법상 논란들이 사법기관의 판례를 통해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표산업 사건은 법 시행 이틀 만인 지난해 1월 29일 발생했지만 지금도 수사 중이다. 고용부가 사고 조사 후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넘겼는데 검찰이 오너인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까지 소환 조사하며 수사가 길어졌다. 책임을 어느 선까지 물을까를 두고 검찰이 막판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성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이 헌법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며 지난해 10월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만약 재판부가 두성산업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면 이 사건은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정지된다. 더 나아가 현재 진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모든 사건의 기소·재판 절차가 멈춰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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