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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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첫사랑, ‘가장 빛나는 순간’을 되돌아보는 '이와이 슌지' 영화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5년 영화 ‘러브레터’는 뛰어난 완성도의 각본과 연출을 비롯해 눈이 내리는 눈 덮인 일본 홋카이도 오타루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영상미와 싱어송라이터 레메디오스의 서정적인 오리지널 스코어가 돋보이는 로맨스 영화의 명작이다. 

일본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흥행에 성공한 ‘러브레터’는 여주인공이 죽은 애인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동명이인에게 잘못 전달되면서 과거를 추억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영화 ‘라스트 레터’(영제: Last Letter, 수입/배급: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직접 밝힌 그대로 ‘러브레터’ 파트2 같은 작품이다.

(이 리뷰에는 영화 내용의 일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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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날로그 시대의 노스탤지어를 추억하는 영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는 21세기에 20세기의 아날로그 감성을 담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90년대 작품인 ‘러브레터’에서조차 워드프로세서로 편지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와이 슌지 감독은 "당시에는 오히려 시대를 앞선 느낌을 주기 위해 사용한 소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0여 년이 흐른 뒤 만들어진 ‘라스트 레터’에는 아날로그 시대의 노스탤지어가 가득하다. 태블릿이 아닌 연필과 펜으로 원고를 그리는 만화가의 모습, 두껍고 무거운 종이사전, 레버로 한 프레임씩 필름을 감아 피사체를 담는 수동카메라 그리고 ‘손편지’가 등장한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런 것들이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약간의 장치를 마련해 화면 안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영화는 시작부터 ‘러브레터’의 문법을 그대로 따른다. 다만 하얀 설원 대신 초록빛 가득한 여름의 계곡이 펼쳐지고 추도식에는 눈 대신 비가 촉촉하게 내린다.

'유리'는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한달 전 생을 마감한 언니 '미사키'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 집에 들른다. 그리고 언니 앞으로 온 고등학교 동창회 초대장을 전달받는다. 유리는 동창회에 참가해 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하기로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동창회에 등장한 유리를 보고는 모두가 그녀를 언니인 미사키로 착각하고 인사를 건넨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을 맡았던 언니의 인기는 여전히 대단했다. 

유리는 얼떨결에 언니인 척 연단에 올라가 어색한 연설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첫사랑 ‘쿄시로’를 마주친다. 유리는 자신을 언니 미사키라고 여기는 쿄시로에게 연락처를 알려주고 명함을 받는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한편, 유리의 남편은 아내의 스마트폰에서 쿄시로가 보낸 ‘오해할 수밖에 없는’ 내용의 메시지를 우연히 본 후 크게 화를 낸다. 결국 유리는 스마트폰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쿄시로에게 답장을 전할 길이 없어진 유리는 그에게서 받은 명함에 적힌 주소를 생각해낸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언니 미사키의 이름으로 손편지를 써서 보낸다.

발신인 주소 없이 도착한 첫사랑 미사키의 편지를 받아 든 쿄시로. 할 수 없이 그는 미사키가 살았던 본가로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그 편지는 미사키의 딸 ‘아유미’에게 잘못 전달된다.

쿄시로의 추억을 통해 영화 시점은 어느새 90년대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미사키와 유리 그리고 쿄시로, 세 사람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 '첫사랑'이라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담은 영화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기억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첫사랑과 만나는 일생일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캐릭터들이 결국 짝사랑에 머물거나 연인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별은 자신만의 궤도 혹은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며 “그런 별들이 가까워지고 겹쳐질 때 굉장히 큰 빛을 내는 순간이 온다. 인간으로 치면 여행자가 떠돌다가 우연히 한 곳에서 만나 머무르게 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그는 “지금까지 내내 그런 이야기를 그려왔다. 등장인물들은 2시간의 영화 속에서 가장 빛이 나게 되어있고 헤어지는 결말은 영화를 만들기 전부터 미리 정해 놓고 있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시간과 함께 사라지며 헤어지는 순간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해피엔딩이냐 아니냐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그 시간 동안 그려지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라스트 레터’에는 이러한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렇기에 쿄시로와 미사키의 인생은 서로를 처음 만났을 때, 유리의 인생은 생물부에서 쿄시로와 함께 했을 때 가장 빛난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 한곳에 모인 ‘이와이 월드’ 캐릭터들

푸르른 한여름의 산뜻함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 ‘라스트 레터’는 ‘러브레터’의 작법을 그대로 잇는다. 그와 동시에 추억의 기성 배우들과 한창 떠오르는 신진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려한 면면을 보여준다.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히로세 스즈는 미사키와 딸 아유미 역으로, ‘날씨의 아이’의 모리 나나는 고등학생 유리와 딸 소요카 역으로 각각 1인 2역을 맡았다. ‘너의 이름은’의 카미키 류노스케는 고등학생 쿄시로를 연기한다.

그리고 ‘4월 이야기’의 마츠 타카코는 성인 유리 역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성인이 된 소설가 쿄시로 역을 담당했다.

여기에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도 나란히 등장한다. 아울러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다소 뻣뻣하지만, 정감 있는 연기도 볼거리다. 이렇게 모인 배우들의 연기는 눈부시게 아름다우면서도 때로는 깊은 어둠을 보여주는 이와이 월드를 촘촘하게 완성해 나간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전작 ‘러브레터’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잊고 지낸 기억을 하나씩 되찾아가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빗대어 설명했다.

이번 ‘라스트 레터’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을 등장시켜서 삼각관계 그리고 투병의 고통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투영한다.

쿄시로가 책장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집으며 새 소설 집필을 다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 중에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소설 ‘미사키’를 바탕으로 신작을 발표할 날을 기대해 보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한편, 영화 ‘라스트 레터’의 음악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코바야시 타케시가 담당해 특유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오리지널 스코어를 들려준다. 아울러 앤드크래딧과 함께 흐르는 모리 나나가 부른 주제가는 영화의 여운을 깊게 한다. 24일 개봉.

▲라스트 레터. ⓒ미디어캐슬/스튜디오산타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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