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고밀도 서스펜스 스릴러의 명작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원제: Tinker Tailor Soldier Spy, 수입/배급: 화인픽쳐스/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는 서방세계와 소련 진영의 냉전이 극에 달했던 70년대, 영국 외무부 소속 비밀정보국 MI6 내부에 침투해있던 이중간첩 ‘두더지’를 색출하는 과정을 담은 서스펜스 스릴러 작품이다.

지난해 타계한 실제 정보기관 요원 출신이자 스파이 소설의 대가인 존 르 카레 원작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케임브리지 5인조 스캔들’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이 리뷰는 영화에 대한 전반적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국 비밀정보국(Secret Intelligence Service), 일명 ‘서커스’의 국장 ‘콘트롤’(존 허트)의 머릿속은 편집증에 가까운 의심으로 가득하다. 조직 내 정치싸움에서 밀리고 있던 그는 소련으로부터 입수하고 있는 고급정보인 ‘마법(Witchcraft)’의 출처에 의문을 품는다. 도대체 어떤 경로와 인물을 통해 소련 내부의 기밀정보를 입수하고 있는 것일까.

그즈음 콘트롤은 모종의 첩보를 입수한다. 서커스 내부에 숨어든 이중간첩 정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서방세계에 망명하려는 헝가리 장군이 있다는 것. 내부 정보누출을 염려한 콘트롤은 암살 및 포섭 전문요원 ‘짐 프리도’(마크 스트롱)에게 헝가리 장군과 접선하라는 비공식 작전 명령을 내린다.

비밀 임무를 안고 부다페스트로 향한 짐. 하지만 그는 소련 KGB의 역공작 함정에 빠져 피격당한다. 이 일이 헝가리 장군 납치 기도 사건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큰 비난을 받자 콘트롤은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다.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는 사건 당시 베를린 출장 중이었지만 콘트롤의 심복이라는 이유로 같이 서커스를 그만두게 된다. 부다페스트 사건 발생 한 달 후인 1973년 11월 17일의 일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릭키 타르’가 쏘아 올린 스파이의 증거

영국 재무부는 콘트롤의 뒤를 이어 서커스를 책임지고 있는 ‘퍼시 올러라인’(토비 존스)과 ‘로이 블랜드’(키어런 하인즈)를 불러들여 작전명 마법과 관련된 예산의 불명확한 사용처를 추궁한다. 업무추진비에 대해 제대로 된 영수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비밀리에 운영하는 안전가옥에 대해서는 기밀 사항이라며 답변을 회피하고 입을 닫는다. 서커스는 안전가옥을 운영해 익명의 소련 정보원으로부터 극비정보를 얻고 있었다.

작전명 마법은 첩보전에서 CIA에게 밀리며 굴욕을 겪고 있던 영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눈엣가시 같았던 콘트롤이 축출된 후 서커스를 장악한 퍼시는 미국 측 극비정보의 상시 열람을 요구할 계획을 수립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이런 상황에서 재무부는 비밀정보국 내부에 이중간첩이 있다는 제보를 받는다. 정보는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쫓기고 있는 서커스 요원 ‘릭키 타르’(톰 하디)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재무부는 이 일의 처리를 조지 스마일리에게 맡긴다. 서커스를 떠난 외부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내 ‘앤’도 떠나버려 쓸쓸하게 생활하고 있던 그는 떨떠름하지만, 제안을 수락한다.

몰래 도망자 릭키를 만나게 된 조지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듣게 된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포섭 작전을 수행하던 릭키는 KGB 공작원 ‘이리나’에게서 서커스 내부에 이중간첩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고 그녀의 전향 의사를 정보국에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때문에 KGB의 습격을 받았으며 자신은 배신자 누명을 쓰게 됐다고 주장한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KGB에게 끌려간 이리나 때문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중간첩이 벌인 짓이 틀림없었다. 의심병 환자의 망상이라 여겨졌던 콘트롤의 두더지 잠입설은 정말 사실일까.

릭키는 스파이 색출에 성공한다면 이리나를 되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그는 이리나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와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조지는 노력해보겠다고 답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팅커 테일러 솔저 푸어맨 베거맨 그리고 스파이

콘트롤은 짐이 부다페스트로 떠나기 전 자신이 이중간첩으로 의심하고 있는 고위간부 5명을 알려준다.

그는 퍼시에게는 팅커(땜장이), ‘빌 헤이든’(콜린 퍼스)은 테일러(재단사), 로이에게는 솔저(병사), ‘토비 이스터헤이즈’(다비드 덴칙)에게는 푸어맨(가난뱅이) 등 동요에서 따온 코드네임을 용의자들에게 붙인다. 심지어 자신의 오른팔인 조지까지도 베거맨(비렁뱅이)이라 칭하고는 의심 리스트에 집어넣는다.

한편, 릭키의 상관 ‘피터 귈럼’(베네딕트 컴버배치)은 조지를 위해 서커스 내부정보 탈취 미션을 수행한다. 그 와중에 서커스를 장악한 퍼시를 비롯한 4인방에게 심문 아닌 심문을 당하며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피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조지는 피터에게 공산주의 광신도이자 KGB 수장인 ‘카를라’와의 악연이 시작된 1955년 첫 만남에서 자신이 어떤 약점을 잡히는 실수를 저질렀는지 털어놓으며 주변 관계를 정리하라고 조언한다. 조지의 말을 따르기로 한 피터는 연인과 이별하며 괴로워한다.

한편 서커스에서 빼낸 내부정보와 모든 정황은 이중간첩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었다. 우선 소련 문정관 ‘알렉세이 폴랴코프’가 카를라의 끄나풀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한 ‘코니 삭스’는 해고당했으며,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건 당시 당직을 섰던 ‘제리 웨스터비’ 역시 서커스에서 쫒겨난 상태였다. 릭키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분명히 전했다는 일급 정보도 서커스 내에서 흔적이 지워져 있었다.

이제 조지는 차 안에 숨어든 벌을 자연스럽게 몰아내듯 그만의 스타일로 두더지를 잡기 위한 덫을 놓는다.

콘트롤에게 대놓고 무시당했던 퍼시, 콘트롤에게 배은망덕했던 토비, 작전명 마법의 실체를 감추려는 로이, 신사적이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빌. 영화는 4명 중 누가 조지의 덫 안으로 걸어들어올 것인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 빠져나오기 힘든 몰입감의 서스펜스 스릴러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처럼 액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첩보물이 아님에도 밀도 높은 긴장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원작 소설이 대작인 만큼 이를 기반으로 만든 이 작품에는 많은 등장인물과 다양한 사건이 배치되어 있다. 설명이 짧아 다소 불친절한 구조일 수 있지만 추리극 같은 긴장감을 선호하는 관객에게는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와 함께 명품 배우들이 연기하는 각 캐릭터의 매력 또한 장점이다.

70년대 냉전 시대 전반에 침잠해있는 공포·혼란한 분위기를 잘 재현했으며, 비극적으로 희생당하는 인간군상을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 역시 특징이다.

극 속에 등장하는 스파이들은 그저 가정을 돌보지 못해 사생활이 망가지는 지친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묘사된다. 그들이 몸담은 정보기관은 상상 이상으로 무능한 조직이며 실적에 눈이 멀어 가짜 정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조직의 파벌싸움에서 밀려난 조지는 멋지게 총을 쏘고 화려한 스포츠카를 몰며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두꺼운 서류철과 밤새 씨름한다. 그가 그렇게 이중간첩을 조용히 솎아내는 과정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모인 사람들, 장전 손잡이를 당기는 짐의 슬픈 눈빛, 이리나를 기다리는 릭키,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코니, 의자에 앉는 조지의 모습이 노래 ‘La Mer’와 함께 깊은 여운을 남긴다.

10년 만에 재개봉한 이 작품은 황석희 번역가의 완성도 높은 번역 자막과 함께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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