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 9명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매력적인 홍상수 월드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홍상수 감독의 ‘인트로덕션’(제작/배급: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은 3부에 걸쳐 부모와 자식 그리고 세대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일상을 담는다.

(이 리뷰는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기다림

영호(신석호)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김영호)를 찾아간다. 한의사인 그의 아버지는 고아원에 전 재산의 반을 맡기겠다고 다짐하며 회개의 기도를 올리는 독실한 신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한의원을 찾아간 영호에게 아버지는 잠깐동안 얼굴을 내밀며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다. 부자의 어색한 대면은 이 한 장면에 그친다.

영호에게 먼저 연락해 만나자고 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가 반긴 사람은 아들이 아닌 약속 없이 갑자기 불쑥 찾아온 유명한 배우(기주봉)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닌 배우의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어보며 대화를 나눈다. 기다림 속에 담배를 태우던 영호는 부재한 아버지 대신 어릴 적 좋아했던 간호사(예지원)와 눈 구경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포옹한다.

한의원 밖에서는 영호의 여자친구 주원(박미소)이 금방 오겠다는 그를 종일 기다리고 있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 만남

주원의 어머니(서영화)는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손으로 바람막이를 해주려는 딸을 빤히 바라본다. 어머니는 별것 아닌 말에 한차례 언성을 높이지만 주원은 그저 고분고분하기만 하다.

의상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어 독일로 유학 온 주원은 어머니 친구인 화가(김민희) 집에 머물기로 한다. 주원은 독일이라 해서 자물쇠가 별다를 리 없을 텐데 쉽게 현관문을 열지 못한다. 그런 딸이 부족한 자신감을 드러낼 때마다 어머니는 매번 자식을 다독인다.

밝고 쾌활한 말투의 화가는 첫인상이 좋다. 혼자 사는 그녀는 존댓말이 불편하다고 하면서도 자기보다 나이 어린 주원에게 말을 놓지 않는다. 친구인 주원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한편, 주원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독일로 찾아온 남자친구 영호의 연락을 받고 놀란다. 그녀는 영호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고자 한다. 어머니는 주원에게 “요즘 아이들은 너무 충동적”이라며 나무라듯 말한다. 하지만 화가는 “충동이 있어야 살아있는 것”이라며 주원을 응원한다. 주원은 화가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참 예쁘게 생기신 것 같다”고 말한다.

담배를 피우며 주원을 기다리던 영호는 그녀를 만나자 무척 반가워한다. 거리를 걷다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인 영호는 주원을 끌어안는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 해변

영호는 친구(하성국)과 함께 동해안에 도착해 담배를 꺼내 든다. 그리고 어머니(조윤희)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친구와 짐작해 본다. 어머니는 예전에 아버지 한의원에서 봤던 유명 배우와 동해안에 놀러 와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영호 어머니는 배우의 한마디에 자기 아들이 연기자의 길을 들어섰었다며 진로에 대해 조언해줄 것 당부한다. 하지만 배우는 영호와의 만남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한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음식점에서 배우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어머니는 영호를 반갑게 맞이한다. 배우는 영호와 친구에게 ‘술을 마시되 절대 취하지 말 것’을 약속해 달라고 한다. 영호 친구는 자신을 향한 ‘약속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에 불청객이 된 것 같아 앉은 자리가 편하지 않다. 중년의 배우는 두 청년에게 술을 계속 권한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술잔을 비운다.

배우는 영호가 연기자의 길을 중단한 이유가 궁금한 듯 캐묻는다. 절대 취하지 말라던 그는 정작 영호의 사연을 듣더니 술기운에 흥분해 화를 내기 시작한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 새로이 다듬어진 반복의 발견

홍상수 감독 작품에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와 자기복제적 요소를 찾는 재미가 있다. 그가 각본, 감독, 촬영, 음악, 편집까지 모두 맡은 영화 ‘인트로덕션’에서도 이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여전히 화면과 음향에는 여백의 미가 존재한다. 상세한 설정이 생략된 채 소개되는 9명의 캐릭터도 그중 일부다. 어떻게 만나고 왜 헤어졌는지 모를 인물들 간의 만남과 기다림에는 담배와 술 그리고 파도 소리가 있다.

스크린 위에는 아주 단출한 구도의 롱 테이크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투사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관객이 극에 집중할 즈음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줌인이 화면을 흔든다. 이런 기법은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도 어디까지나 현실과는 다른 재현의 순간이라는 영화 예술의 본질을 깨닫게 만든다.

이번 작품은 ‘오!수정’(2000), 북촌방향(2011), 강변호텔(2019) 등 홍상수 감독의 다른 흑백영화들과는 달리 아날로그 비디오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의도적인 과다노출과 열화된 저해상도 영상의 이 미화 없는 일상 풍경 속에는 전작들처럼 문답식 대화를 계속 주고받는 캐릭터들이 채워진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생략되어 겉으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인트로덕션’에는 지질한 연애사가 없다. 대신 순수한 사랑의 절대적 가치를 믿는 영호와 순종적인 주원이 그 자리를 메꾼다.

영호는 마음도 사랑도 없이 가짜로 여자를 안을 수 없다며 키스 연기를 죄스러워한다. 그런 영호는 꿈속에서조차 주원에게 친절하다. 반면 기성세대인 유명 배우는 뭐가 됐건 남자가 여자를 안는 건 다 사랑이고 좋고 아름다운 것이라며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한다.

갑작스레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취급은 세대에 따라 제각각이다. 1부에서 약속 없이 나타난 유명 배우는 영호 아버지에게는 반가운 사람이지만 2부에 등장하는 영호는 충동적이라며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3부에서 영호 친구는 그저 불청객일 뿐이다.

모순된 감정과 함께 파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인트로덕션’은 ‘도망친 여자’(2020)와 마찬가지로 카메라의 마지막 시선을 바다로 향한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은 다양하겠지만 홍상수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옥희의 영화’(2010)의 영화감독 진구처럼 “그냥 만든 것”이라고 간단히 답할지도 모를 일이다.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각본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인트로덕션’은 여전히 단출한 시선으로 미화 없는 일상을 담는다. 그 속에서 기성 가치관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주관 그리고 모순이 거세게 파찰음을 낸다. 그 지점에서 새롭게 다듬어진 반복의 발견을 지나 홍상수의 세계 안으로 입문하게 만든다는 점은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27일 개봉.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인트로덕션. ⓒ영화제작전원사/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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