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 ‘새로운 시도’ VS. ‘극명한 이질감’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지난 10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아야와 마녀’(원제: アーヤと魔女, 수입/배급: 대원미디어/리틀빅픽처스)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의 소설 '이어위그와 마녀'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이 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첫 극장판 연출을 맡았던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을 연상시키는 도로 위 추격 장면으로 도입부를 시작한다.

12명의 동료에게 쫓기던 빨간 머리 마녀(김윤아)는 나중에 찾으러 오겠다는 메모만을 남긴 채 딸 아야츠루(이성은)를 세인트 모어발트 보육원에 맡기고 사라진다. 사람을 조종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야츠루는 아야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원장 선생님(안경진)의 사랑 속에서 어느새 10살 소녀로 성장한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당돌하고 영리한 아야는 보육원 안에서 단짝 커스터드(성예원)와 원장 선생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 모두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한다.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내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아야는 보육원에서 사는 게 마냥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은 벨라(성선녀)와 거인 같은 맨드레이크(민응식)에게 입양이 결정되면서 아야의 행복했던 일상은 끝이 난다. 아야는 그렇게도 싫어하던 입양을 '당하게' 되자 잔뜩 찌푸린 얼굴로 보육원을 나선다.

하지만 아야는 벨라와 맨드레이크의 불길한 13번지 저택에 들어서면서도 당당하다. 이런 곳에서라면 언제든지 간단히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눈썹을 치켜세우며 미소까지 짓는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들의 미스터리한 마법 저택은 비밀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도망칠 출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사실 벨라와 맨드레이크는 엄밀히 말해 부부를 가장한 입양 사기꾼이다. 벨라는 그저 집안 허드렛일을 시키기 위해 고아인 아야를 선택한 것뿐이었다. 졸지에 마법의 저택에 갇혀 노예가 될 운명에 처한 아야. 하지만 기죽을 아야가 아니었다. 벨라가 마녀임을 알게 된 아야는 오히려 조수를 자처하며 마법을 배우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잔뜩 기대하고 들어간 마녀의 작업실은 더럽고 지저분한데다가 참기 힘든 역겨운 악취로 가득했다. 이 정도면 보통의 10살짜리 아이가 아닌 성인도 못 견딜만한데 아야는 온갖 잔심부름과 청소를 척척 해낸다.

여기에 말할 줄 아는 고양이 토마스(서반석)까지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아야는 약속과 달리 마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일만 시켜 먹는 마녀 벨라를 혼내줄 계획을 꾸민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 자립심 강한 악동 아야의 자기 세계 정복기

‘아야와 마녀’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풀 CG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2006)로 애니메이션 감독 데뷔했던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셀룩 기법의 TV 애니메이션 ‘산적의 딸 로냐’(2014)를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의 장점은 우선 오랜만에 극장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로고가 나오는 신작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코쿠리코 언덕에서’(2011)의 타케베 사토시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60·70년대 영국의 글램록, 프로그레시브록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들려준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20세기에 발표된 명작 성장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1989)와 소재 면에서 유사점을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풍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도전 정신이 담겨있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 감성에서 벗어나 디즈니·픽사, 드림웍스 등 할리우드 제작사의 세련된 풀 CG 애니메이션에 근접하려는 미래지향적 첫 시도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한 애니메이션은 생명과 영혼을 담아내야 하는 고난도 창작 작업이다. CG, 그림, 그림자, 점토, 모래 등으로 생명이 깃든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각각의 전문 연출법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야와 마녀’는 CG 애니메이션 초창기에나 볼 수 있던 영혼 없는 플라스틱 인형극 같은 느낌을 준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CG 배경이나 사물은 부분적으로 실사에 가까운 질감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물의 경우는 창백하고 생기 없는 피부 색감과 질감으로 표현되어 어색하기만 하다. 대표적으로 메두사 같은 벨라의 머리카락 구현은 강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부자연스러운 광원과 음영 처리는 한 화면 안에서 미니어처 느낌의 배경과 플라스틱 피규어 같은 인물이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긍정적 평가나 감독 본인이 밝힌 3D CG 인형극 연출 의도와는 별개로 결국 비주얼만 놓고 보면 결코 좋은 그래픽 품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먼저 CG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었던 우리나라 작품들 중 특히 홍성호 감독의 ‘레드슈즈’(2019)와 비교해봤을 때 CG 수준 차이는 확연하다. 

후속편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새로운 전개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막을 내리는 각본은 열심히 달리던 중간 갑자기 막다른 길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는 미야자키 하야오·고(故) 타카하타 이사오 콤비가 전성기에 맹렬하게 만들어내던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작 부활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야와 마녀’가 TV 방영용으로 기획된 만큼 풍족하지 못한 예산의 한계 속에서 만들어진 CG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CG 품질과는 별개로 ‘삐삐 롱스타킹’의 수습 마녀 버전 같은 독립심이 강하고 진취적인 악동 아야가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부분은 작품의 큰 장점이다.

벨라와 맨드레이크가 처음에는 무시무시한 악역처럼 등장하지만 결국 커스터드와 함께 아야에게 꼼짝 못 하는 '충직'한 하인 같은 가족처럼 변화하는 모습 역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관람 포인트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이 작품의 기획을 맡은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야 캐릭터에 대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표정, 감정,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작품 안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세계를 정복해나가는 아야의 지혜와 강인함은 성인에 견줄만하다. 

기존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꿈과 용기를 키워주는 아동용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만 본다면 긍정적 메시지의 전달력도 좋은 편이다.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비교하기 힘들었던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연출력은 이 작품에서 그의 전작들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자우림 김윤아가 영화 주제곡 'Don't Disturb Me'의 한국어 버전을 불렀으며, 아야의 엄마 마녀 역 목소리 연기로도 작품에 직접 참여했다. 83분. 전체 관람가.

▲아야와 마녀.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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