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나이트. ⓒ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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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과 문명 사이에서 자아 찾아 나서는 매혹적인 판타지 서사극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그린 나이트'는 14세기 영국 기사도 문학을 미스터리 하면서도 매혹적인 판타지 서사로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색슨족의 침략에 맞서는 켈트족의 이야기인 아서 왕 전설 속에는 명검 엑스칼리버, 원탁의 기사들, 기사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불륜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중 J. R. R. 톨킨이 현대어로 풀어낸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는 기사도와 마법을 둘러싼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론 하위드의 '윌로우'(1988)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이 매력적인 녹색 기사 이야기를 재창조해낸다. 이 작품은 판타지와 종교적 색깔이 뚜렷하게 녹아들어 있는 서사이기에 역사적 고증을 세밀하게 따질 필요는 없다. 미술, 의상, 인종 등 표현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탐미적인 미장센을 곳곳에 배치한다. 또한 현대를 관통하는 인간 본성 탐구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원전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린 나이트. ⓒ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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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가웨인(데브 파텔)은 노쇠한 아서왕(숀 해리스)의 조카로 왕위를 이어받을 후계자라는 특별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영웅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마법사 멀린에게 마법을 배운 모건 르 페이(사리타 초우드리)의 아들인 그는 마녀의 자식으로 불린다. 왕의 배려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모습들은 그가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젊은이임을 잘 보여준다.

가웨인은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아서 왕 연회에 참석한다. 성화(聖畵) 속 광배(Nimbus)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독특하면서도 다분히 의도적인 디자인의 왕관을 쓰고 있는 왕과 왕비의 모습은 중세 영국의 구심점인 기독교 세계관을 대표한다.

아서 왕과 귀네비어(케이트 딕키)의 옆에 앉게 된 가웨인은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로 얻게 된 특권이 불편하기만 하다. 주군인 아서 왕과 브리튼 왕국을 위해 싸운 다른 기사들에 비하면 내세울 만한 자신만의 무용담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린 나이트. ⓒ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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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멜롯에 들이닥친 위압적인 모습의 녹색 기사(랄프 이네슨)는 가장 용감한 기사가 칼로 자신의 목을 내리치면 부와 명예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일 년 후에는 자신이 있는 녹색 예배당으로 찾아와 똑같이 칼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초자연적인 이교도 마법으로 소환되어 기독교 세계에 도전한 녹색 기사 앞에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그러자 자신만의 전설을 만들고 싶었던 가웨인은 원탁의 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모하면서도 용기 있는 도전에 나선다.

이겼지만 진 것만 같은 목 베기 게임에서 가웨인에게 약속됐던 일 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두려움 속에 고민하던 그는 결국 기사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비장한 모습으로 체인메일을 두른 채 녹색 기사를 찾아 나선다.

▲그린 나이트. ⓒ팝엔터테인먼트
▲그린 나이트. ⓒ팝엔터테인먼트

거대한 도끼를 짊어지고 자신의 목을 내놓기 위한 여정에 나서는 가웨인의 모습은 마치 예수의 고난과 그리스 서사시 속 영웅 오디세우스를 보는 듯하다. 기사의 다섯 덕목인 관대함, 신의, 순결, 예의범절, 연민과 연결된 모험 안에는 도적, 정령, 여우, 여인 등이 등장해 그를 시험하고 유혹하고 회유한다. 특히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가웨인의 연인인 에셀과 그를 유혹하는 귀부인 역을 동시에 맡아 의도된 연출이 돋보인다.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사 가웨인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 위해 떠나는 여정은 기사도가 사라진 현대의 관점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러나 서양사에서 십자군 전쟁 같은 이교와 기독교의 충돌이 빈번했던 시대에 도덕과 규범 그리고 미학이 합쳐진 기사도 정신은 매우 중요했다. 중세시대 기사도가 기독교와 더불어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 문명사회를 지탱하게 만든 핵심 사상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웨인의 행동은 당연하다.

▲그린 나이트. ⓒ팝엔터테인먼트
▲그린 나이트. ⓒ팝엔터테인먼트

마녀·정령·거인을 담은 판타지, 이교의 초자연적인 전설 그리고 기독교 신화가 공존하는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는 14세기에 쓰였지만, 완전히 현대적"이라며 "이번 작업은 원작과의 대화로, 원작 시에 담긴 가치를 반영하는 한편 그러한 가치를 지금 이 시대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도록 할 것인지 탐구했다"고 각색 의도를 설명했다.

유약하기만 했던 청년 가웨인은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의 끝에서 주마등을 경험하며 불교의 열반에 이르듯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는 스스로 찾아냈을 때 가장 밝게 빛나는 법이다.

◆ 제목: 그린 나이트(The Green Knight)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29분

◆ 개봉일: 8월 5일

◆ 감독·각본·편집: 데이빗 로워리/출연: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제작: A24/수입: 찬란/ 제공·배급: 팝엔터테인먼트/공동 제공: 소지섭, 51k

▲그린 나이트. ⓒ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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