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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진의 SR컬처] 21세기 시각으로 보는 철갑기사들의 '라쇼몽'…영화 '라스트 듀얼' 리뷰

기사승인 2021.10.15  06: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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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리들리 스콧 감독 연출…맷 데이먼, 벤 애플렉, 니콜 홀로프세너 공동 각본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에는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증언을 하는 나무꾼, 도적, 사무라이 그리고 사무라이의 아내가 등장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라쇼몽'은 거짓된 자기합리화를 펼치는 인물들이 등장해 이기주의적인 인간 본질을 명확하게 담아낸다. 각자의 관점에 따른 상대주의적 현상은 이 영화의 이름을 따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로 불리고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이하 '라스트 듀얼')는 '라쇼몽'과 이야기 구조가 유사하다. 이 작품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백년전쟁(1337년~1453년)이 한창이었던 14세기 중세 봉건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1386년, 프랑스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허용됐던 마지막 '결투 재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릭 재거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했다.

(이 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용맹하고 충직한 가신이자 다정한 남편 '장'

'라스트 듀얼'은 하나의 같은 사건을 세 사람의 관점에서 각각 다르게 서술한다.

먼저 제1장은 노르망디 지역 유력 가문 출신의 용맹한 지주인 장 드 카루주(맷 데이먼) 시각이다. 두려움을 모르며 정의감이 충만한 그는 리모주 전투에서 시민을 학살하는 적에게 돌격한다. 절친 자크 르 그리(아담 드라이버)의 목숨도 구해준다. 장은 이 전투에서 죽을 각오로 싸웠음에도 패배해 영지를 지켜내지 못한다.

장의 영주는 프랑스 국왕 샤를 6세 (알렉스 로우더)의 사촌인 피에르 달랑송 백작(벤 애플렉). 그는 전장에서 돌아온 가신 장의 충정을 외면하고 마치 그를 벌레 보듯 대한다. 반면 장의 친구 자크는 티가 날 정도로 총애한다.

지주지만 곤궁했던 장은 티부빌 집안의 외동딸 마르그리트(조디 코머)와 재혼하기로 한다. 세상이 꺼리는 역적 티부빌 가의 불명예를 세탁해주는 결혼이다. 이 신성한 결혼으로 받게 될 지참금은 비옥한 영지 '오누-르-포콩'. 하지만 피에르 백작은 그 영지를 덥석 빼앗아 장의 친구인 자크에게 준다. 그리고 아버지 뒤를 따라 당연하게 이어받으리라 생각했던 벨렘 성주 지위도 자크의 몫이 된다.

장은 절친이라 생각했던 자크가 생명의 은인인 자신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는 영주에게 아첨하며 주지육림에 빠져 지내는 자크를 생각하면 그저 부아가 치민다. 그러나 파산한 장은 돈 벌기 위해 또다시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처지다. 

문제는 또 있다. 자신을 믿고 섬기는 아내 마르그리트. 그녀는 다정하고 인자한 자신과의 부부관계에 아주 만족하면서도 대를 이을 후사를 잉태하지 못한다. 인생이 힘들기만 했던 장은 전공을 세워서 기사 작위를 얻는다. 드디어 신분 상승을 이뤄낸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겨우 죽음의 전장에서 돌아오던 날, 장과 마르그리트 부부는 따뜻하게 서로를 포옹한다.

그러나 전쟁 참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장이 파리로 간 사이 탐욕스러운 자크가 집에 침입해 마르그리트를 강제로 범한다. 장은 진실을 털어놓으며 힘들어하는 아내의 이야기에 세심하게 귀 기울인다. 자크가 결혼 지참금과 성주 자리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까지 탐하자 장은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는 파리로 달려가 샤를 6세에게 자크와의 결투 재판을 윤허해달라 요청한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친구를 아끼는 문무 겸비 능력자 '자크'

자크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제2장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서술된다. 애초에 리모주 전투 패배 원인은 피에르 백작의 명령을 어기고 무단으로 자리를 이탈한 장의 잘못이었다. 심지어 무모하게 적에게 뛰어들어 개죽음당할 뻔한 장의 목숨을 살려준 것은 오히려 자크였다. 더구나 그는 피에르 백작 앞에서 친구인 장의 편을 들며 계속 옹호해왔었다.

피에르 백작으로서는 자기 명령을 무시하고 전쟁에서 막대한 손해를 끼친 장이 꼴도 보기 싫은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런 멍청하고 무식한 봉신의 충성맹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면 자크는 문무를 겸비한 똑똑하고 훌륭한 가신이다. 재정확보를 위해 세금 걷는 일을 맡겼더니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악착같이 돈을 받아온다. 티부빌 가문에서는 밀린 세금보다 갑절은 가치가 있는 영지 '오누-르-포콩'을 받아온다. 피에르 백작은 충신 중의 충신인 자크에게 그 영지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자크 입장에서는 장의 지참금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일해서 얻은 것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잠시 사이가 나빴지만, 자크는 장과 다시 만난 연회장에서 화해하고 앙금을 풀어낸다. 그때 자크는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를 처음 보고는 사랑에 푹 빠진다. 마르그리트 역시 자크가 싫지만은 않은 기색을 보인다.

결국 친구의 아내인 미르그리트와 관계를 맺었지만, 자크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서로 좋아서 이루어진 화간. 자크는 사랑이 죄냐며 당당하게 무죄를 주장한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죄인이 된 선량한 피해자 '마르그리트'

그러나 마르그리트 시각의 제3장에서는 앞서 두 남자의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고발한다. 장과 사랑 없는 정략결혼을 한 마르그리트는 흑사병으로 죽은 그의 전처를 대신하기 위해 카루주 가문에 물건처럼 팔려 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후계자를 낳기 위한 건강하고 튼튼한 암말처럼 다뤄진다. 잠자리에서 만족하지 않으면 임신하지 못한다는 중세시대 믿음에 따라 장은 물론 타인들 앞에서도 기쁨을 느꼈노라 눈물을 흘리며 거짓을 고한다.

마르그리트는 맹세코 소문난 난봉꾼 자크에게 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한 키스를 나눈 적도, 은밀하고 따뜻한 눈길을 보낸 적도 없다. 스스로 신발을 벗으며 그의 유혹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육욕을 다 채운 후 서로 사랑한 것이라 억지를 부리고 뒤돌아서는 자크의 함구 명령에 그저 두려워 숨죽이는 약자였다.

남편 장은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으며 따뜻한 포옹조차 할 줄 모르는 매정한 남자다. 그래도 남편이기에 마르그리트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남편은 오히려 마르그리트를 겁박하고 죄인으로 몰아세운다.

장은 마르그리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자기 영역을 침범당해 소유물인 아내가 흠집 난 물건이 된 불명예와 모욕을 참지 못할 뿐이다. 장은 그녀에게 자크와 별 다를 바가 없는 짓을 한다.

두 남자는 서로 목숨을 건다. 기사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쟁이가 아님을 신을 통해 증명받으려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대 피해자는 마르그리트다. 그녀는 신의 심판에서 만약 남편이 패하면 위증과 무고죄로 끔찍한 작열의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한다.

이 부당함을 절절하게 묘사하는 제3장은 타이틀을 표기하는 방식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그럼으로써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명확한 메시지에 대해 방점을 찍으며 발가벗겨진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리들리 스콧만이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 액션 연출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결투자들'(1977), 로마 제국 시대를 다룬 '글래디에이터'(2000), 십자군 전쟁 배경의 '킹덤 오브 헤븐'(2005)에 이어 다시 한번 자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웅장한 스펙터클 전쟁 액션을 만들어냈다.

그의 액션 연출에는 육중한 타격감이 실려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 영화에서 연출한 마상 결투 시퀀스는 말 그대로 숨 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만든다. 두 철갑기사들이 벌이는 피의 결투는 역사적 사실의 고증에 따른다. 시작을 웅장하게 그리고 끝을 장엄하게 맺는 전쟁과 결투 시퀀스 만으로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할 가치는 충분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과거부터 여성 서사 영화를 다수 연출해왔다. 그의 대표작인 '에이리언'(1979)를 필두로 델마와 루이스(1991), G.I.제인(1997), 프로메테우스(2012) 등은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라스트 듀얼'은 야만성을 드러내고 허영심에 가득 찬 가해자 남성들의 부조리와 이에 반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용기 있는 피해자인 여성이 대구를 이루는 구도다.

'굿 윌 헌팅'(1997)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받았던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은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여성주의 영화라고 밝혔다. 감독인 니콜 홀로프세너는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과 함께 공동 각본가로 참여했으며 극의 핵심인 제3장을 여성 시각에서 세밀하게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이야기를 세 번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러닝타임 152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서사 연출과 몰입감 높은 각본을 갖추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결투 액션 못지않게 장마다 등장인물 시점에 따라 달리 묘사한 점을 찾아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로 자리한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라쇼몽'과 비슷하지만 다른 구조…사라진 제4장

'라스트 듀얼'은 '라쇼몽'과 구성이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를 보인다. '라쇼몽'에서는 결론에 이르러 멀리서 사건을 지켜본 객관적인 관찰차인 나무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의 증언을 통해 다른 인물들의 주장은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꾸며낸 허무맹랑한 거짓임이 밝혀진다. 물론 이것은 나무꾼의 고백이 진실이라는 가정하에 성립한다.

그렇다면 '라스트 듀얼'에서 장과 자크 그리고 마르그리트, 이 세 사람을 객관적으로 관찰한 '사라진 제4장'의 증인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12월 추운 날씨에도 장과 자크가 명예와 목숨 건 세기의 대결을 오락거리로 즐기기 위해 모여 있는 군중들 속에 함께 섞여 있다. 각자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 증인들에게 진실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기 아들이 살아남길 빌고 아끼는 가신이 이기길 바라며 입을 다문다.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밝혔다. 모든 역사 기록에는 사관의 의도와 주관적 관점이 투영된다는 뜻이다.

'라쇼몽'이 도적이나 사무라이 혹은 사무라이 아내의 주장에서 이야기를 멈췄다면 '라스트 듀얼'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라스트 듀얼'에서 만약 각본가들이 부유한 지주 자크가 억울한 모함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료도 함께 반영했다면 어땠을까. 정말 픽션 '라쇼몽'의 사무라이 아내와 논픽션 '라스트 듀얼'의 마르그리트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었을까.

영화 '라스트 듀얼'의 결론에는 신의 뜻에 따라 밝혀졌다는 진실인지 아닌지 모를 결과에 환호하는 군중에게 둘러싸인 승자와 비참한 패자가 있을 뿐이다.

시대적 이슈가 반영된 '라스트 듀얼'이 인간 본성의 심연에 대해 질문하는 70여 년 전 작품 '라쇼몽'처럼 명작 반열에 오를 것인지는 관객들이 평가할 문제다.

◆ 제목: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영제: The Last Duel)

◆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러닝 타임: 152분

◆ 개봉일: 10월 20일

◆ 감독: 리들리 스콧/출연: 맷 데이먼, 아담 드라이버, 조디 코머, 벤 애플렉/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심우진 기자 site21@daum.net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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