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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초대석] <8> '영원히 정치에 산다' 6선 이인제 전의원

기사승인 2022.08.16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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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인 15대 대선 후보 때와 같이 당당함과 열정을 보여주는 이인제 전 의원ⓒSR타임스

◆ 홍용락 고문이 만난 '시대를 바꾸는 사람들' [8] 젊을 때나 지금이나 '영원히 정치에 산다' 6선 이인제 전의원

 

KBS별관 쪽 동 여의도의 한 건물 7층에 있는 (사)한반도통일연구원을 찿았다. 몇 분의 연구원과 함께 있는 사모님으로부터 따뜻한 차 대접을 받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6선 의원에 경기도지사, 노동부장관 등 34년 정치경력인 이인제 전 의원은 오랜 공직생활이 몸에 배여서 그런지, 질문의도를 한번 파악하고 신중하게 답변을 하는게 습관화 된 대화법 같았다.

게다가 돌발질문에도 막힘없이 유창하게 답변하는 모습은 명불허전의 34년 정치경력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집자 주]

 

- 어떤 정치상황도 본인이 생각하는 관점으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정치고수의 품격   

- 어릴적 수재로 판사를 거친 법조인출신이지만, 뼈속까지 나라걱정만 하는 기·승·전·정치로 귀결하는 정치인

- 중도합리적 정치적 지향은 ‘냉전이념’에 대한 거부감, ‘지역패권주의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가진 정치철학 때문

-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면 자천 타천 대선, 총선, 지선을 출마하는 ‘정치는 정년이 없다’는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줘 

 

Q. 국민의 힘 상임고문으로 윤석열정부 출범에 지대한 공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잘 되겠죠?

== 국회의 여소야대 상황과, 언론계, 교육계, 노동계가 아직도 지난 좌파정권의 영향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출범했기 때문에, 순탄하지 않을 것은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여건을 받아 들이고, 극복을 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전략을 추진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Q. 말씀하신 것 처럼 역동적인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까?

== 미진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이 현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대처하면 고비를 잘 넘어 갈 거로 희망합니다.

 

Q.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또 지혜롭게 대처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이죠?

==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문재인 정권은 단순히 진보정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유럽 좌파 정당성격도 아닙니다.

젊은시절 주사파 운동권 세력들이 국가운영이라는 것을 했기 때문에 결과는 나라의 대혼란을 가져왔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들 문정권 좌파세력들은 독립된 준 사법기관인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빼앗아, 자기들이 손아귀에 부릴 수 있는 경찰에 그 권한을 넘겼지 않습니까. 소위 ‘검수완박’을 한거죠.

이렇게 입헌민주주의 중심 자체를 무너뜨리는 검찰 수사권을 헌재를 통해서라도 단호히 찾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인제 전의원은 6선 의원과 경기도지사, 노동부장관을 지낸 관록있는 정치인이면서도, 예리한 질문엔 신중한 자세를 보여 준다ⓒSR타임스

Q. 그런 윤석열 정부의 의지를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등으로 확실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경찰의 집단항명 등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혼란이 나오는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 일부 경찰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문제가 있지만, 하늘에 주먹 휘둘리는 격입니다. 경찰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검찰은 독립된 준 사법기관 입니다. 그래서 자체적인 인사, 재정권이 있고, 또 그 조직자체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는 안전판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경찰은 그런 제도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권 잡은 문정권 좌파세력 수사권한까지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경찰 권한 비대를 견제하기 위해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이 경찰을 통제해 왔지만, 민정수석실이 없어진 윤석열 정부에서는 행정안전부에서 경찰을 통제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경찰조직을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데는 이치적으로 분명히 제 갈길을 가는 겁니다.

 

Q . 의원님 오랜 정치생활 중 나라와 시대를 바꾸려고 한 기회가 있었죠? 당시에 많은 국민들이 의원님의 생각을 동조해 주고 지지해 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제 정치생활에 의욕적으로 시대를 국민들 하고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장 크게 가진 때는 15대 총선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역 연고지 몰표없이 전국 골고루 20% 가까이 득표를 했습니다. 또 16대, 19대 대선 경선에서도 내가 캐스팅보트를 쥘 만큼 지지율이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15대 대선때는 대내외적으로 민주화 시대와 세계화의 흐름이 있는 시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으로 시장확대와 EU(유럽연합)출범이 되면서 세계와 국내가 공히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변화되는 시대적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우리정치는 냉전우파와 미약한 냉전좌파로 갈라져 있었으며, 소위 3김으로 대표되는 보스정치 속에 지역연고가 정치의 판세를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가 되는 후진성 정치판이었습니다.

이 때 내가 세계화와 민주화 국내 환경, 지시사회에 어울리는 정치문화를 창조해 내고 싶은 의욕으로, 시대정신에 걸맞는 정치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한반도통일연구원 사무실에서 지난 시간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 나라걱정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이인제 전의원ⓒSR타임스

Q . 당시에 의원님이 어떤 역할을 했기에, 그렇게 많은 지지율로 국민들에게 호응을 받으셨나요?

== 우선, 앞에서 얘기한 역동적 시대환경속에 내가 서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소위 3김청산과 세대교체라는 큰 틀이 형성되는 시대적 요구를 수행해야 하는 과업이 있었습니다.

이런 정치환경에서, 제가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를 정확히 읽는 젊은 리더쉽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3차, 4차 산업시대를 여는 비전을 제시한게 국민들로부터 지지가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 시대를 바꿀 수 있는 격동의 시기를 거쳐 갔군요. 이 시기를 의원님 시대로 만드는데, 조금 미흡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몇몇 분들이 거론하는 의원님의 확고한 정치적 비전이 부족한데서 기인한 것도 하나의 변수가 되었지 않을까요?

== 그 시기 저는 지금도 아쉽습니다. 결과적으로 정치상황이 나의 편이 아닐 수 있었죠. 그 때나 지금이나 나한테는 '강력한 통일주의자'와 '시대변화를 선점해야 한다' 는 정치적 신념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제가 그 시기 대권을 잡았으면 남북한 통일은 벌써 이뤄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있게 말합니다. 1990년쯤은 동서독 통일이 되었고, 동구권을 지배하던 러시아의 영향력이 없어진 상황입니다.

또 이 시기는 북한에 영향력을 끼쳐 남·북한 통일을 방해할 수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은 미미한 시기였습니다. 1997년쯤 내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좌고우면 하지 않고 남북한 통일로 막 바로 나갔을 겁니다.

 

Q . 통일시대를 앞장서 이끌어 가자는 정치적 신념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왜 뚜렷한 신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있나요?

== 그 시대 우리사회는 냉전적 보수가 득세하는 시기였습니다. 북한과 통일하자는 구호는 외치지만 실제로 우리 체제로 흡수통일하자는 생각이 지배하는 시기였지 않나 생각됩니다.

또, 냉전적 보수측 위세에 대등하게 맞서지는 못하지만 냉전적 보수와 적대적 관계를 가지는 냉전적 진보가 양쪽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그런 상황이었죠.

이러한 환경에서 좌우갈등과 영호남의 분열을 벗어나 남북통일을 이루자는 나의 정치신념은 양쪽 세력이 워낙 거대해서 파묻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올곧은 정치신념이 어둠에 묻혔다’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신념을 갖고 추진하려던 의원님의 통일 전략과 전술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실행되지 않은 것을 지금 와서 묻는게 의미가 없을 듯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강하지는 않지만, 항상 논리적으로 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를 이해와 납득을 시키려고 노력한다는 이 전의원.ⓒSR타임스

Q . 지금까지 6선의원을 하면서 좌·우정당, 지역정당, 군소정당을 바꿔서 정치를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 내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열 몇번 정당을 바꿨다는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997년 대선만 해도 그렇습니다. 50% 지지율을 기록하던 당시 이회창후보가 아들 병력 미필로 7%로 지지율이 격감했습니다.

그때 경선에서 패배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럼에도 야당의 김대중후보와 경쟁하는 이회창후보는 필패를 예약한 상황이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서야 하는 것은 분명히 당위성이 있는게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나선겁니다. 그럼에도 보수쪽에서는 이회창후보가 어차피 안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제가 표를 잠식해서 졌다고 핑계를 댑니다. 이 정도면 적반하장도 유분수 아닙니까.

(그 시대를 거쳐서 살아온 입장인 질문자는,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 지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분명한 것은 당시 15대 대통령으로 야당인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Q .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화창후보가 패배한 것은 의원님이 표를 분산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규명한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월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내 탓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당시 국민들의 여론조사에서는 내가 우위에 있었는데, 그 정당 내부의 주류인 민정계가 이회창후보를 지지해더 국민여론과 반대로 대통령후보를 지지한 것이 패배의 단초가 된 것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Q . 그렇다면, 의원님은 근본적으로는 보수정치로 출발해서 유력 대선후보까지 되셨는데, 김대중대통령 시절 좌파정당인 새천년민주당으로 옮긴 것은 보수에서 대선후보가 불가능한 이유였나요?

== 천만에요. 김대중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지금의 윤석열 정부처럼 여소야대 정치지형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당시 속하는 정당이 없는 나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으로 러브콜이 있었습니다.

전제조건은 ‘지역패권주의 포기’ ‘중도개혁주의 정당’을 만들자는데 동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나의 정치적 소신도 한국정당이 극단적인 보수와 좌파 대립으로 무의미한 정치사가 계속되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있지만, 민주당은 다양성과 적극성이 뛰어나고 공화당은 거대한 국가우선을 추구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념대립이 없는 범 중도보수 정당 아닙니까. 나는 이런 정당에서 정치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 전의원은 정치이력에서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대권의욕을 보인 점에 대해서는, ‘지역패권주의’를 무너뜨리고 ‘중도개혁주의’을 선호한 정치적 소신이었다고 강변한다.ⓒSR타임스

Q . 그런 포부를 가지고 있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통령 후보가 정치적 목표 아니었습니까?

== 물론이죠. 또 초기에는 나에 대한 대선후보 지지율이  60%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 때도 정치공작에 내가 당했습니다.

요즘 문재인 정부 국정원장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박지원씨가 언론에 공소시효가 지났다면서, 그 당시 김대중대통령과 공작으로 나를 대선 후보로 배제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후보로 만들었다는 것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닙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신을 가지고 중도개혁 정치를 해보고 싶었지만 정치공작의 희생물이 되어 중도하차 한 것입니다.

 

Q . 그럼 대권가도에서는 불운으로 대권을 가지지 못하였다고 일단 생각하죠. 하지만 이 시대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서 시대변화를 능동적으로 바꾼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 나는 기본적으로 시대변화를 수용해서 미래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의정활동이나 기타정치활동의 기본 목표입니다

내가 45세에 최연소 노동부장관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전 경제부처와 경제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광석화처럼 개혁적 ‘고용보험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결과 외환위기 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했습니까? 또 경기도지사시절 중소기업신용보증조합을 경기도에 처음으로 설치했으며 경기문화재단과 여성능력개발센터, 경기사이언스파크 등 현재의 경기도로 성장하는 밑거름을 다져 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자리가 주어질 때 그 시대변화에 맞게 능동적으로 시대전환을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Q . 지금까지 말씀으로 보면 기회가 올 때마다 변화하는 시대를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합니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도 앞으로 선거에 계속 나가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요?

== 정치는 은퇴가 없습니다. 힘과 의지와 열정이 있는 한 계속해야 합니다. 또 정치를 하는 사람은 열정이 있는 한 나라 걱정도 계속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국민이 원하는 사람을 국민이 대표를 뽑는 방향의 선거와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 후보의 모든 조건도 주권자인 국민이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생 정치를 해온 사람으로서 다음 총선에서 지금의 여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돼야 우선 윤석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는 정권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는 나라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맡고 있는 국민의 힘 상임고문 역할도 열심히 해서 당의 역량을 결집시키는데 보탬이 되겠습니다.

▲이 전의원의 '정치에는 은퇴란 없다' 라는 단 한마디는 다음 22대 총선에도 출마와 당선을 생각하는 뉘앙스로 표현되었다.ⓒSR타임스

Q. (대화중에 느낍니다). 의원님은 정치가 어떻게 나라를 발전 시키는가? 하는 의제에 모든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정작 의원님의 정치 스타일은 어떤지, 의원님께서 알고 계시는지요?

== (잠시 생각하고) 정치를 오래 하다 보니까, 주변에서 나를 ‘피닉제’(불사조(피닉스)+이인제의 ‘제’)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나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저의 이미지와 잘 맞는 거 같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모름지기 정치지도자로 남 앞에 나섰으면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현실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가진 에너지를 다 태우는 열정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구도자 입장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의 정치스타일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런 자세로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Q. 계속 정치일선에서 열정을 가지고 사시겠다는 말씀이신데, 앞으로의 정치행보를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 정치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여러가지지만, 나는 꿈, 즉 상상력과 또, 용기와 결단력이 정치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나라가 잘 살고 못사는 것을 결정하는 것도 정치경쟁력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부강한 미국과 독일이 정치경쟁력이 강한 나라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예가 그 증거입니다.

따라서 정치인은 높은 지식도 필요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기본덕목에 충실하면서 주어진 현안에 대해 일을 도모하고 미래를 통찰하여 나라를 부강 시킬 일에 방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국민들한테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정치에 이제까지 경험을 바탕으로 앞장서 해 나가고 싶습니다.

 

Q. 표현이 가벼운거 같습니다만, 오랜만에 정치가 직업이신 분을 뵙는거 같습니다. 그 만큼 의원님이 정치분야에 프로 정치인 이라는걸 인터뷰 내내 공감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여쭙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정치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추켜줘서 감사합니다. 사실 나는 속 마음은 다정스러운데, 다른 사람에게 표현이 무뚝뚝하게 느껴진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건 내가 일찍부터 정치지도자 길을 걸어 오면서 나와 접촉하는 상대라든지, 또는 국민들이 모두 행복해지는데, 내가 앞장서겠다는 신념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와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라가 잘되는 길은 정치경쟁력을 높여야 된다는데 생각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고, 그런 방향으로 정치가 지향점을 잡기를 건의하고 내가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적극 실행해 보고 싶습니다.

▲홍용락고문(사진 오른쪽)과 인터뷰하는 6선 이인제 전 의원ⓒSR타임스

Q. 그런 획기적이고 신선한 정치발전 방향이 궁금해 지네요? 뭐죠?

== 예, 정치도 이제는 하나의 산업으로 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금처럼 정치가 정치하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고 영향 받는 국민들도 따로 노는 것은, 정치를 전달자(정치인)와 수혜자(국민·시민)가 인과관계만으로 조금 더주고 조금 덜 받고 하는 관행속에서만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치를 하나의 산업적 관점으로 보고 양자 사이에 ‘효율성’을 극대화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이 미국과 독일에서 시행되는 ‘싱크탱크’ 기능을 활성화 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즉, 정치인들은 좋은 법률 만들어 내고, 고도화된 인프라를 발견해서 효율적 예산을 입안하는 것이 주 기능입니다. 지금 우리의 국회의원들도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한 사람이 물리적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어도 전문성과 방향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국가예산으로 민간 싱크탱크를, 또 독일은 정당마다 능력있는 싱크탱크로  입법기관 조력자로 활용함으로서 의원들이 수준높은 입법활동과 예산 활용성을 갖습니다.

우리도 국가 예산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우수한 인적자원은 국가와 의정발전에 적극 활용해 보자는게 제가 힘 주어 강조하는 취지입니다.

  

Q. 마무리 말씀이라서 특별하게 코멘트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도 국민의 힘은 여의도연구원과 민주당은 ‘민주연구원’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 물론 있죠. 문제는 시작은 다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지금 제 기능을 합니까? 당료들 자리배치용이거나, 당내 주류 집단이 정치적 우선권 확보를 위한 여론용 논리 개발하는데 활용되는 정도 아닌가요?

 

▲ⓒ홍용락 논설고문

(인터뷰를 끝내고 엘리베이터까지 정중하게 배웅하는 모습이 화면을 통해 본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인터뷰 내내 신중하면서도 짧고 간결한 화법이, 또 본인이 강조하는 점은 시대를 넘나드는 해박한 식견으로 논리를 만들어 설득을 하는 열정도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다음 총선에서 현역 정치인으로 복귀해서 끝까지 정치적 신념을 펼치려는 꿈을 보면서, 나이는 비록 많지만 20대초 청운의 꿈을 품은 청년의 집념을 물씬 느끼게 했다)  

 

 

[대담=홍용락 논설고문]

 

 

 

 

홍용락 논설고문 hyrack@hanmail.net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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