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 "‘공각기동대’가 해맑은 학원물로 재탄생한다면?" 에 대한 대답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창작 작업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대중은 항상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을 찾는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눈높이는 더 높아졌다. 영화 티켓 가격이 꽤 오른 이후 시네필들은 흔해 빠진 이야기에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다. 

영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Sing a Bit of Harmony)’는 시놉시스만 놓고 보면 차별점이 없어 보인다. 장르마저도 오랜 세월 동안 헤아릴 수없이 많은 작품이 발표됐던 SF물과 학원 코미디물의 하이브리드 영화다.

그렇기에 얼핏 보면 그저 그런 미형 캐릭터와 인기 성우 캐스팅에 승부수를 거는 양산형 애니메이션처럼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이런 닳고 닳은 클리셰 범벅 작품이 여전히 투자를 따내는구나’라는 속단은 금물. 

편견은 주인공 ‘시온’(츠치야 타오)과 ‘사토미’(후쿠하라 하루카)가 만나는 순간부터 벽돌 깨기 게임처럼 한 블록씩 차근차근 격파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소재는 평범하지만 제대로 엮어 놓은 감동 포인트와 타율 좋은 코미디 그리고 청량한 음악이 영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에는 확실하게 들어 있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극장 상영을 놓칠 수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온은 ‘인간과 대화하고 공존이 가능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로봇이다. 이 인간형 AI 로봇 시온을 수년간 개발해온 ‘아마노’는 연구 성과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필드 테스트를 결정한다. 

그 테스트란 시온을 자신의 딸 사토미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전학생으로 위장 투입하는 것. 겉모습만 봐선 인간과 구분이 쉽지 않은 로봇 시온이 고등학생들과 섞여 지내면서 5일간 정체를 들키지 않으면 테스트는 대성공이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그러나 이 대담한 비밀 작전은 시온이 교실에 투입된 직후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시온이 사토미를 보자마자 “지금 행복하니?”라며 갑자기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기 때문. 

항마력이 필요한, 누가 봐도 낯간지럽고 오글거리는 시온의 돌발행동에 당황하는 사토미. 사실 사토미는 진작에 시온의 정체가 엄마의 연구 프로젝트임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 

만약 ‘오류투성이처럼 보이는’ 시온의 정체가 탄로 날 경우 엄마의 인생이 담긴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필사적으로 시온의 비밀 지킴이로 나서는 사토미.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하지만 사토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인간답지 않은 톡톡 튀는 행동으로 연이어 대소동을 일으키는 시온. 말썽꾸러기 로봇 시온의 정체를 숨겨줘야만 하는 사토미의 악전고투는 눈물겹다. 

그러는 사이 재수 없는 고자질쟁이 모범생 취급받던 사토미 주변에는 어느새 ‘토우마’(쿠도 아스카), ‘곳짱’(오키츠 카즈유키), ‘아야’(코마츠 미카코), ‘산다’(히노 사토시) 같은 친구들이 조력자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정에 휘말려 들게 되고 위기와 갈등을 겪는다. 그때 시온의 정체를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들이 우연히 밝혀지면서 사토미는 뜻밖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 잘 쓴 시나리오·출중한 연출력·아름다운 음악

로봇과 인공지능(A.I.)이라는 소재는 SF 작가들의 상상력 속에서 끊임없이 활용돼왔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각각 ‘아이, 로봇’(2004), ‘블레이드 러너’(1982)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온 많은 SF 작품 중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와 가장 유사한 소재의 영화다. 물론 분위기나 이야기 톤은 완전히 다르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AI 소재 영화들은 대부분 디스토피아적 서사를 담고 있다. 어둡고 진중하며 우울하기까지 하다.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를 보고 있으면 탁월한 미장센에 감탄하면서도 무게감과 딥다크한 분위기에는 중압감을 느낀다.

물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같은 시리즈에는 모성애를 지닌 인공지능이 등장하기도 하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 아이’(2001)같은 작품은 피노키오 동화 같은 서사로 감동을 준다. 하지만 대부분 ‘웨스트 월드’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처럼 자기 존재를 자각한 인공지능은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는 이런 작품들에 대항하는 밝고 찬란한 안티테제다.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은 “그렇다”고 답한다. 덕분에 스티븐 호킹의 무서운 경고는 영화를 보는 동안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학원물 위에 인간의 행복을 찾아주겠다며 천진난만한 AI가 난입한다는 설정이 더해지면서 터지는 웃음 타율은 100%에 가깝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정의 파도도 여러 차례 넘실거린다. 

“네트워크는 광대하다”며 인간의 도시를 차갑게 내려다보는 ‘공각기동대’ 스타일의 AI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이브를 향한 일편단심뿐인 ‘월-E’(2008)를 떠올려볼 만한 따뜻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성이 충만하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성장을 거듭하는 AI의 전사가 펼쳐내는 예상을 넘어서는 감정선과 깊이감이 느껴지는 플롯 구성에는 거침이 없다. 흔해 빠진 소재만으로도 삐걱거림 없이 특별한 작품을 빚어내는 솜씨 좋은 이야기꾼의 시나리오에 더해 다시 첫 장면부터 두 번 세 번 되감아 보고 싶을 정도로 탁월한 메타포 배치와 연출 구성도 일품.

이 정도면 감독의 직전 작품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REBOOT’(2016)가 단발에 그쳤다는 점이 뒤늦게 아쉬워질 정도다. 오시이 마모루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내러티브의 ‘패트레이버’가 나왔을텐데 말이다.

AI와 사랑(愛)이라는 중의적인 뜻을 가진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의 제목이 대한민국으로 넘어오면서 의미가 추가된 점도 재미있다.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스틸. ⓒ라이크콘텐츠

이 영화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로 음악을 꼽을 수 있다. 처음에는 항마력이 필요했던 노래가 어느새 ‘겨울왕국’ 느낌의 뮤지컬 가창으로 다가와 감정을 끌어올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마다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이 영화가 돌비 애트모스 포맷으로 제작되지는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의 감성 요소에서 삽입곡들이 차지하는 지분은 크다.
 
9월에는 빵빵 터지는 추석용 액션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10대들의 로맨스와 우정 그리고 가족애를 담은 성장 영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로 가을의 감수성을 충전해보는 것 또한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시온의 끊임없는 질문에 이제 영화를 본 관객들이 답해 볼 차례다. 22일 개봉.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포스터. ⓒ라이크콘텐츠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포스터. ⓒ라이크콘텐츠

◆ 제목: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 원제: アイの歌声を聴かせて (Sing a Bit of Harmony)
◆ 감독/각본: 요시우라 야스히로
◆ 등급: 12세이상관람가
◆ 러닝 타임: 108분
◆ 수입: 미라지 엔터테인먼트
◆ 배급: 라이크콘텐츠
◆ 개봉: 2022년 9월 22일

◆ 평점: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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