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상장기업들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26일 한국 증시의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증시의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국내 기업이 제대로된 평가를 받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기업들은 주주가치 제고 보다 오너 일가 혹은 지배주주의 이익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대주주에게 과도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부여하면서 회사 내 직원과 일반 주주의 이익은 편취당하고 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비등기이사 등재로 오너의 책임경영 회피 ▲승계 위한 주가 누르기 등 다양한 편법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SR타임스는 오너 중심의 주요 유통 대기업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 신세계그룹
▲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 신세계그룹

[SRT(에스알 타임스) 유수환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달 8일 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원톱’ 체제를 구축했다. 2006년 부회장 취임 후 18년만이다. 실적 부진과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해 위기를 벗어나겠다는 그룹의 의지다. 

하지만 리스크가 산적해 있다. 그룹의 캐시카우였던 이마트는 지난해 첫 적자를 기록했다. 주가도 바닥을 기고 있다. 

사업다각화로 추진했던 사업도 부진하면서 재무부담이 커지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실적 부진의 책임으로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으나 위기 초래의 본질은 오너인 정 회장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회장은 여전히 비등기이사로 등재돼 있어 권한만 행사하고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마트의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나온다. 증권업계에서는 “오프라인 3사 간 시너지 창출을 꾀하고 있고 할인점의 비용 축소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면서 “최근 의무휴업일 변경은 수혜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은 취임 후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장 취임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자제하더니 최근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전부 삭제했다. 

◆이마트, 12년만에 첫 적자에 주가도 '바닥'…정용진 연봉은 되레 늘어  

국내 최대 오프라인 유통기업인 이마트가 12년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이마트가 영업손실을 낸 것은 신세계그룹에서 분할해 별도 법인이 된 이후 처음이다. 자회사인 신세계건설, 쓱닷컴의 부진이 영향이 있지만 본업인 대형마트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매출(연결 기준)은 전년보다 0.5% 늘어난 29조4,722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46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순손실 규모는 1,875억원이다. 매출 규모에서는 쿠팡(7조3,900억원)에 처음으로 역전당했다. 

이마트가 대규모 적자를 낸 것은 주력 자회사들의 실적 부진이 영향을 미쳤다. 건설 계열사인 신세계건설은 지난해 1,878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분양 경기가 저하된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재무부담이 확대된 것이다. 이커머스 사업인 SSG닷컴은 매출 1조6784억원, 영업손실 1,030억원으로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업도 부진하다. 이마트의 별도 기준 지난해 연간 매출은 16조5,500억원, 영업이익은 1,88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각각 2.1%, 27.3% 감소했다. 순이익은 2,588억원으로 75.3% 줄었다.

IBK투자증권 남성현 연구원은 “유통법 규제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양한 대체 채널이 등장했고, 할인점 외 사업부문의 경쟁력도 약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적 악화는 결국 인력 감축으로 이어졌다.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중이다. 대상은 근속 15년·과장급 이상 직원이다. 

주가도 부진한 실적과 함께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8일 종가 기준 이마트의 주가는 6만8,300원원으로 1년 전 대비 34.4% 하락했다. 5년 전 주가와 비교하면 60.2% 하락했다. 현재 이마트의 시가총액은 1조 9,039억원으로 쿠팡 시가총액(한화 42조5,698억원)에 5%도 못미친다.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에도 정용진 회장의 입지는 '건재'하다. 정 회장이 지난해 이마트부터 받은 보수는 약 36억9,900만원으로 전년(36억1,500만원) 대비 늘었다.

이와 관련 한국노총 소속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은 “이 엄혹한 시절에 본인은 회장님 되시고 직원들은 구조조정 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백배 양보해 책임경영으로 포장하자”고 비판했다. 이어 “회사 어렵다는 상투적인 말만 주저리 주저리 할게 아니라 왜 그렇게 됐는지 회사의 냉철한 자기 분석과 반성을 바란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모른 척하고 있다”며 “벌거벗은 임금님에 간신들이 난무하는 회사에 아무리 KPI(성과지표)를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냐”고 질타했다.

◆사업 다각화 추진으로 금융부담 커져

사업 다각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도 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 회장은 그동안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정 회장이 주도했던 사업 가운데 상당수는 실적 부진으로 철수한 경우가 많다.

일례로 이마트는 2016년 유통망을 활용한 주류사업(제주소주 인수)에 뛰어들었으나 5년만에 사업을 접었다. 또 ▲2017년 H&B 스토어 부츠(Boots) ▲2018년 만물상 ‘삐에로쑈핑’ ▲이마트 가정간편식(HMR) 전문점 ‘PK피코크’ ▲영화제작사 ‘일렉트로맨 문화산업전문회사' 사업을 접었다. 

3조4000억원을 들여 인수한 이베이코리아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마트는 지난 2021년 종속회사 에메랄드에스피브이를 통해 이베이코리아 지분 80%를 취득하는 주식매매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지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이마트 인수 이후 줄곧 적자다. 지난해에도 지마켓은 321억원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결제 시장에서도 쿠팡에 밀렸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쿠팡(쿠팡, 쿠팡이츠) 결제추정금액이 4조3,665억원으로 이마트 전체 결제추정금액(4조1.861억원)을 앞섰다.

'성과 없는' 사업다각화로 금융부담은 커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이마트의 이자보상배율은 0.1 수준이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면 일 년간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마트는 실적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 이마트는 기존 점포를 미래형 점포로 리뉴얼하는 등 오프라인 경쟁력을 강화해 올해 매출 30조원을 넘어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먼저 이마트는 기존 매장의 효율화와 가격 경쟁력 제고에 집중할 방침이다. 또 식료품 강화와 더불어 비식품 매장을 축소해 맛집·전문점 등을 입점시킬 계획이다. 

◆"작년 인사 단행 관련 상장기업 거버넌스 관점서 문제" 지적

상장기업으로서 기능도 작동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신세계그룹은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이 가운데 정용진 회장에 신임을 받았던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대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에 대해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연세대 교수)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이 같은 인사 단행은 (상장기업) 거버넌스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강희석 전 대표는 이마트 이사회의 의장인데 사실상 ’셀프해임‘을 한 셈이다. 게다가 신세계그룹 이명희 총괄회장과 정용진 회장은 이사회 멤버가 아니다. 이사회로서 제대로 절차를 거쳤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내부 승진 인사였기 때문에 이사회 절차를 밟을 필요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현재 이명희 총괄회장과 정용진 회장, 정유경 신세계그룹 총괄사장 모두 그룹의 지배주주이지만 등기이사는 맡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는 경영에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정용진 회장은 그간 등기이사가 아니어서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보수는 많이 받는 등 책임 있는 경영자 모습을 보이지 않아 경영 위기가 초래된 것”이라며 “본인도 이사회 참여를 통해 책임경영을 실현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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