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부문 수상…컬러 영화 이상의 강렬한 영상미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어떤 영화들은 정적이고 섬세한 영화의 시작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있어 매우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다. 10일 재개봉하는 파벨 파블라코브스키 감독의 영화 ‘이다(원제: Ida)’ 또한 그렇다.
영화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인물들을 1.33:1(4:3) 화면 비율의 중심부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단이나 구석에 배치된 인물 구도는 뒷배경에 그칠 수녀원 건물의 낡고 오래된 질감과 그 안에 스며 있는 서늘한 공간감을 눈앞에 끌어와 증폭시킨다.
절제와 금욕, 신성에 대한 경외 그리고 그 앞에서의 순명이 시각화 된 방 안에서 ‘안나’(아카타 트르제부츠우스카)는 수녀 서원 전에 이모 ‘완다’(아가타 쿠레사)를 만날 것을 명령받는다.
단 한 명의 혈육이지만 이제껏 만난 적이 없는 이모를 찾아 도시에 도착한 안나는 1960년대 초 폴란드의 번화한 거리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한다. 안나는 완다에게 왜 자신을 보육원에 버렸냐고 물어보지만, 이유를 알기 힘든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공산 폴란드 정부하에서 판사로 일하며 자유분방하게 사는 완다는 다시 볼 일 없을 자신의 하룻밤 상대에게 인사하는 안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곤 대뜸 안나에게 그녀가 유대인이며 본명이 ‘이다 레벤슈타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완다는 안나를 볼때마다 가슴에 묻어두려 애썼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안나는 죽은 동생 로자를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묘지를 찾아 고향인 피아스키로 가겠다는 안나. 완다는 그런 안나에게 “신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쩔 거냐”고 묻는다. 안나는 대답 대신 웃는 얼굴로 이모를 바라본다.
◆ 비극적 가족사의 진실과 자아에 대한 확인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와 독한 알코올에 인생을 기댄 채 살던 완다는 그렇게 안나와 함께 묘비 없는 무덤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로자의 빨간 머리를 물려받은 안나는 예전 부모님 집에 살고 있는 펠릭스 가족의 딸을 축복해준다. 그리고 외양간에서 그녀는 어머니가 만든 색유리를 지나온 밝은 햇빛을 뺨으로 느껴본다.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이 이야기는 반유대주의 전쟁 범죄를 고발하는 영화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다. 범죄의 가해자 혹은 동조자들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거나 외면한다. 오직 한 사람만이 나서지만, 그 역시 거래를 원할 뿐 안나와 완다에게 용서를 구하지는 않는다.
높은 지붕 그리고 천장을 비추던 카메라는 이제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세 사람이 공허한 하늘 아래 보이지 않는 무게에 짓눌려 있음을 담아낸다. 그들이 숲에 들어서자 비로소 빈 공간은 굵직한 나무들로 빽빽해지고, 화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인물들은 화면의 중심부에 들어선다.
한때 완다의 처신을 날 선 경계심 끝에 서서 내려다봤던 안나. 이제 안나는 완다가 부재한 공간에 대신 들어가 본다. 안나는 자신의 서원식에 오지 않겠다고 했던 이모가 “해보지도 않고 희생을 맹세해봤자 의미가 있을까”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안나는 자기 자신을 알아내기 위해 처음으로 완다의 조카 ‘이다’가 돼 본다.
피아노 배경음악과 함께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된 흔들리는 길 위의 안나 모습은 그녀 내면의 자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한다.
영화 ‘이다’는 촬영된 필름 한 컷 한 컷이 흑백 예술사진과 다름없을 정도로 컬러 영화 이상의 강렬한 영상미를 보여준다. 2015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 작품은 폴란드 유대인의 비극적 역사를 배경으로 공간과의 경계를 허무는 영상과 건조하면서도 세밀한 심리묘사의 연출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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