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삶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수작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첫 데뷔작인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2015)와 두 번째 장편 ‘로데오 카우보이’(2017)로 큰 주목을 받은 클로이 자오 감독의 세 번째 작품 ‘노매드랜드’(원제: Nomadland, 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는 삶의 터전이던 도시의 경제 붕괴로 한 여성이 평범한 보통의 삶을 뒤로하고 유랑족이 되어 미국 전역을 떠도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에게는 TV도 휴대전화도 없다. 그녀는 캠퍼밴 안에서 낡은 라디오 안테나를 이리저리 움직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콧노래를 부른다.

자신은 홈리스가 아니라 그저 고정된 거주지가 없을 뿐이라고 말하는 펀은 ‘노매드(Nomad)’라 불리는 유랑족이다.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과거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에서 임시 교사로 일했던 펀은 US 석고 광산 직원인 남편과 평범한 인생을 누렸다. 부부에게는 탁 트여 사막 너머 멀리에 산맥까지 보이는 뒷마당이 있는 집도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3년이 지난 2011년 지역사회를 지탱해주던 석고 공장은 공룡이 멸종하듯 사라진다. 공항이 있고 골프장도 있던 엠파이어의 지역경제는 완전히 붕괴했으며, 모든 사람이 떠나버려 우편번호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이 된다. 펀은 그렇게 살던 집을 버리고 유랑족이 됐다.

어둡고 차가운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펀의 표정은 물기 하나 없이 말라 갈라진 땅처럼 굳어있다. 그러던 그녀가 희미한 랜턴 불빛 아래에서 양철 상자를 열고 부모님과 동생 사진을 꺼내 든다. 펀은 아마도 그 시절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린 듯 금세 밝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소리 내 웃는다.

귀퉁이가 닳아버린 작은 흑백 사진을 손끝에 올려두고 매만지는 그녀의 눈빛은 점점 각별해져 간다. 카메라는 한없이 따뜻한 감정이 스며 나오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펀은 남편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죽어가던 그의 고통을 빨리 끝내주는 게 낫지 않았을까. 유랑족 공동체에서 만난 백발의 ‘스웽키’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스웽키도 펀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삶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 침대 위보다는 알래스카에서 유랑족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한다. 펀은 아마도 길 위에서 다시 볼 수는 없을 것 같은 스웽키와 그녀의 하얀 밴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유목민들이 가축에게 먹일 목초지를 찾아 유랑하듯 펀은 아마존 물류 센터, 캠프장, 사탕수수농장, 식당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사막, 숲, 바다 등 생경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사이 관객은 어느새 펀의 밴을 함께 타고 매직 아워 빛깔로 물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한 유량에 동행하는 듯한 유사체험을 하게 된다. 조슈아 제임스 리차즈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예술적 비주얼의 결과다.

유랑족 공동체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금방 친하지고 우정을 쌓는 펀은 매우 사교적인 듯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완고함도 가지고 있다. 결혼반지를 손에서 빼지 않는 그녀는 작고 낡아빠진 5,000달러짜리 밴 수리에 2,300달러가 든다 해도 그 값을 치르고 고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엿하게 ‘뱅가드’라는 이름도 있는 이 밴은 그냥 차가 아니라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아주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 가득한 ‘집’이다. ‘미나리’(2020)의 제이콥 가족이 사는 바퀴 달린 컨테이너 집만큼이나 펀에게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못하는 사람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산업화 국가에서 가장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펀의 동생 ‘돌리’는 언니와는 정반대의 세상에 터전을 마련했다.

돌리는 바깥세상을 떠도는 언니 펀이 미국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추켜세운다. 언니를 이해하는 유일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리는 그간 언니의 부재로 생긴 마음속 빈 곳이 채워지지 않음을 아쉬워한다.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삶의 터전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은 상실감을 안은 채 떠돌아다닌다면 사람이 제법 모질고 거칠어질 법도 하다. 하지만 펀은 모두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펀을 원하고 그녀가 곁에 머물길 바란다.

하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침대보다는 불편하고 좁은 밴 안에서 편히 잠잘 수 있는 펀은 지붕 있는 집이 더는 자기 몸에 맞지 않음을 느낀다.

의자를 조용히 안락함과 평온이 깃든 탁자 안으로 밀어 넣고 일어서는 펀. 그녀는 다시 아마존 물류 센터에서 바삐 손을 움직인다. 그녀는 다른 이처럼 밴을 버리고 정착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의 존재를 지우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작별인사 없는 유랑족의 삶 안에서 슬픔과 상실을 치유한다.

남편의 기억이 남아있는 함께 했던 공간은 뿌연 먼지가 수북하다. 같이 먹고 자고 생활했던 공간은 이제 현관문을 열어도 ‘돌아왔네’라며 반겨주는 이 하나 없이 버려져 있었다. 하지만 뒷마당 풍경은 여전히 그 때와 똑같았다.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펀은 그녀가 항상 기억해온 풍경 안을 향해 추억을 싣고 뱅가드와 함께 끝없는 유랑 길에 오른다. 불확실한 여정이지만 이것은 펀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생명을 이어나가는 삶의 방식이다. 그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본다.

이 작품은 살아온 환경이나 가치관에 따라 관객이 제각기 다른 다양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를 통해 저마다 원하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등장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난도 보여주지만, 동시에 강인함과 기쁨도 보여준다. 관객들이 슬픈 이야기의 부분에서는 상실감도 느끼고 카약이나 집 짓기 같은 모험에서는 흥분감도 느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베니스 황금사자상, 골든 글로브 작품상 및 감독상을 받았으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각색상, 편집상 등 주요 6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펀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이미 ‘파고’(1996), ‘쓰리 빌보드’(2017)로 아카데미 여우주연 부문에서 2회 수상을 기록한 관록의 배우로 이번 시상식에서도 강력한 수상 후보로 예측되고 있다.

▲노매드랜드.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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