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네 번째 아메리칸 프론티어 작품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지난 5일 개봉한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원제: Those Who Wish Me Dead,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재난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사투를 담은 서바이벌 스릴러다.

(이 리뷰는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몬태나 옐로스톤 국립공원 지역에 새로 배치되는 공수소방대원 임관식을 지켜보던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전 남자친구인 보안관 이든(존 번탈)과 동료들이 주고받는 농담에 웃음을 터트린다.

한나를 잘 아는 이든은 최근 그녀가 감시탑에 배치된 것에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한나는 '운이 좋아서'라고 담담하게 답한다. 이든에게 자신이 있는 감시탑이 가까우니 집에서 바비큐 할 때 물 폭탄 안 맞게 조심하라고 농담을 건네지만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한나가 속한 공수소방대는 남자가 전자담배를 피우면 놀림감이 될 정도로 거칠고 마초 성향이 강한 집단이다. 까마득한 고도 4,000m 상공에서 떨궈져 산불 현장에 그대로 뛰어들어야 하는 극한직업을 가진 그들은 동료끼리 서로의 목숨을 지켜줘야만 한다.

한나는 그런 공수수방관 중에서도 누구보다 강인하고 용감하며 뛰어난 판단 능력을 보여 리더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서 있었던 비극적 사건으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되면서 지금은 한직인 감시탑으로 밀려난 상태다. 제발 바보짓 하지 말라는 이든의 부탁에도 한나는 정신적 상처와 내재한 죄책감을 떨어내지 못해 충동적이고 무모한 행동을 보인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한편, 노련한 살인청부업자 잭(에이단 길렌)과 그의 파트너 패트릭(니콜라스 홀트)은 여섯 시간을 달려 제거해야 할 타깃이 있는 플로리다 잭슨빌에 도착했건만 만만치 않은 그들은 이미 낌새를 알아차리고 종적을 감춘 뒤였다. 이 주도면밀해 보이는 프로페셔널 킬러 콤비가 첫 번째 표적을 너무 요란하게 처리한 덕분에 두 번째 목표물을 놓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목표물이 도망갈 만한 곳을 알아내기 위해 집을 수색하던 중 한 가지 단서를 발견한 잭과 패트릭은 몬태나의 울창한 숲을 향해 차를 돌린다. 냉혹한 그들은 흑막의 인물 아서(테일러 페리)가 의뢰한 이 제로섬 게임을 반드시 완료해야만 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든은 생존 캠프를 운영하는 임신한 아내 앨리슨(메디나 생고르)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중 매형 오웬(제이크 웨버)에게 온 전화를 받는다. 법의학 회계사인 오웬과 그의 아들 코너(핀 리틀)는 바로 잭과 패트릭이 제거하고자 하는 목표물이었다.

오웬은 빠른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정부 권력자들의 거대한 범죄 정보를 알게 된 이상 경찰도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킬러들을 피해 아들 코너와 함께 이든이 있는 변방 지역으로 도피한 후 방송국에 사건을 제보할 계획을 세운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고 책임을 떠넘길 사람이 필요했던 산림청에 의해 희생양이 됐지만 큰 불평 없이 감시탑에 도착한 한나. 하지만 그녀는 잊히지 않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한나는 숲속에서 우연히 사람을 피해 도망치는 코너를 발견한다. 얼굴에 묻은 피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코너는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죽음의 공포로 겁에 질려 있었다.

살인이 그저 일에 불과할 뿐인 잭과 패트릭은 코너를 찾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들의 얼굴을 본 모든 이를 죽일 것을 다짐한 무자비한 킬러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빠르게 번지는 산불에 가로막혀 고립된 한나와 코너 그리고 이든과 앨리슨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 이번에는 여성 서사…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또 다른 변방 이야기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작가 마이클 코리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테일러 쉐리던 감독이 각본과 연출에 참여한 작품이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이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와 '로스트 인 더스트'(2016)의 각본과 '윈드 리버'(2017)의 각본·연출을 통해 아메리칸 프론티어 3부작을 세상에 내놓아 큰 호평을 받았다.

그의 이전 작품들은 모두 미국의 번화한 중심도시가 아닌 변방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애리조나와 멕시코 국경지대, '로스트 인 더스트'는 텍사스 미들랜드와 오클라호마, '윈드 리버'는 와이오밍 인디언 보호구역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역시 감독의 전작들과 같은 특징이 잘 부각되고 있다. 서두에는 플로리다를 무대로 시작하는 듯했지만 결국 중심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몬태나 외곽 옐로스톤 국립공원 지역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경제활동 생명력을 잃고 죽어가는 도시가 아닌 대자연의 산림지역이라는 점이지만 결국 미국의 변방이라는 점은 같다.

광활한 지역에 비해 인구가 적어 유사시 치안 유지를 위한 가용인원이 부족하다는 점의 묘사도 동일하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연루된 점도 있지만 극 중 등장하는 킬러들이 웨스턴 영화의 무법자들처럼 살인을 저지르고 다녀도 저지할 수 있는 공권력은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도망쳐야 하는 인물들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들짐승처럼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더구나 산불이라는 재해까지 겹쳐 진퇴양난의 위기에 놓이게 되면서 위기감은 점점 극으로 치닫는다. 

외지인의 무자비한 습격이라는 위기상황과 잠시나마 말이 등장하는 점은 전통 웨스턴 영화 요소가 접목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스릴러 영화와 재해 영화의 장르적 매력과 볼거리까지 더해지면서 신선한 감각의 작품으로 다가온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악당 역할을 담당하는 잭과 패트릭 캐릭터에 대한 설정 부분이다. 그들은 첫 등장부터 빈틈없고 완벽한 인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전문가답지 않게 매번 일 처리가 소란스러우며 뒷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다. 거기다 상대에게 허점을 보여 역습 기회를 여러 번 제공하기도 한다.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과 아이를 추적하고 있는 상황인데 백업팀이 없어 일이 벅차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산불의 뜨거운 화염 대신 영하의 설원을 배경으로 한 '윈드 리버'에서는 대적하기 어려운 비열한 악당 무리가 등장한다. 그러함에도 여지를 남기지 않고 거의 대부분의 악인을 단 한 명이 나서서 효율적으로 단죄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던 '윈드 리버'와 비교할 부분인 것이다. 이 작품은 분명 같은 감독이 연출했기에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원작이 있는 작품이기에 결은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야기 구조에서는 앞선 3부작과는 확실히 비교되는 차별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여성주도의 서사가 이루어진다는 부분이다.

전작에서는 전문 군사훈련을 받은 여성일지라도 들러리나 보조자 역할에 머물렀다. 그와 달리 이번 작품은 여성 소방관이 사건의 중심에서 가장 맹렬히 활약하는 여성 서사 서바이벌 스릴러로 완성됐다. 여기에 더해 복선이 깔려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의외의 클리셰 비틀기가 등장한다. 이 장면 역시 가장 눈여겨볼 지점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킬러들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고 오웬과 코너가 살해위협에 내몰리게 된 발단인 거대 범죄의 증거는 맥거핀으로 활용된다. 전작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요소는 한나와 코너를 이어주는 역할도 겸하면서 트라우마 치유와 구원의 과정을 담은 플롯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또한, 이 작품에서는 미국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주로 정서적 아픔을 극복하는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폭력의 표현이나 묘사 수위도 전작들과 비교해 낮춰진 편이라 상대적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상업영화의 모습을 갖췄다.

실제로 20~25그루의 나무를 태우며 4일간 촬영이 진행된 화재장면의 특수효과에 대해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해 불을 재현하면 수학 방정식처럼 일종의 리듬이나 패턴이 존재하게 된다"면서 "시각효과로 불을 재창조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자연의 불은 패턴이 없기 때문이다. 시각효과로 후속 보완을 하더라도 일단 실재하는 것을 카메라로 담은 후에야 컴퓨터가 그 무작위적 특성을 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리지널 스코어에 대해서는 "영화 속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행동과 감정을 모두 잡아낸다"고 전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영화 속에는 여러 개의 주제가 공존하고 캐릭터들을 통해 동시에 표현된다. 서바이벌 스토리와 추격전, 산불, 그리고는 결국에는 긴박한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이 모든 것을 몰아낸다. 어떤 시점이 되면 두려움에 굴복하거나 극복해야 하지만 종국에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의 분노를 대면하게 되고 그것이 관객들에게 흥미진진하고 강력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언론시사회 이후 진행된 라이브콘퍼런스에서 한나 역을 맡은 주연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한나라는 캐릭터가 코너를 맡아 생존을 돕는 과정에서 스스로 구원을 하게 됐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며 "이 영화 자체가 저에게 치유하는 힘을 가져다줬다. 저는 이 영화를 촬영할 시점에서 유난히 강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극 중 한나가 코너와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제 속의 내적인 강인함을 찾고 제가 나아가는 힘을 구축했다"고 전했다.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는 “몸을 쓰는 동시에 감정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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