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 가정 자녀가 겪는 혼란과 상처 세밀하게 담아낸 작품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이지형, 김솔 감독의 '흩어진 밤'은 부모가 이혼을 결심하게 되면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게 되는 10살 아이의 시점을 담은 작품이다.
(이 리뷰에는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수민(문승아)은 자기 나이만큼 오랫동안 살아온 집에 부동산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게 편하지 않다. 수민의 평생 추억이 깃든 집이지만 이미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아빠 승원(임호준)은 엄마 윤희(김채원)는 앞으로 자신들이 따로 살게 될 것임을 딸 수민에게 말한다. 중학생인 수민의 오빠 진호(최준우)는 부모님이 이혼한다는 사실을 전부터 알고 있었던 눈치다.
이제 한 가족으로 한 집에 살던 네 사람은 곧 분리와 상실을 경험해야 한다. 수민은 자신과 오빠가 엄마 아빠 중 누구와 함께 살게 될지 경우의 수까지 생각하며 고민을 시작한다. 가족 중 그 누구와도 따로 떨어져 살고 싶지 않은 수민에게는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다.
그에 비해 진호는 부모님이 헤어진다면 영어 강사인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마음을 정한 지 오래다. 특목고에 가게 되면 기숙사가 집보다 재미있을 거라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공부에만 매달린다.
이들의 가족여행은 매번 한 사람씩 빠지면서 완전한 한 가족을 이루지 못한다. 겨우 모든 가족이 모인 수민의 10살 생일 축하 자리에서는 어른들의 말다툼과 반목이 이어진다. 그사이에 낀 수민과 진호는 정서적 상처와 함께 소외감을 깊게 느낀다.
진호는 전부터 거리감을 느껴왔던 아빠가 매번 자기 일터인 박물관에 데려가는 게 지겹다. 거기다 시종일관 무뚝뚝한 태도를 보이는 아빠 곁이 편하지 않다. 어쩌면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아빠를 싫어하는 엄마를 닮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엄마와 시간을 보내던 수민은 저녁 시간에 같이 있어 주면 안 되냐고 묻는다. 하지만 엄마는 일이 좋다고 대답한다.
승원은 아내가 욕심이 많다 하고 윤희는 남편이 자기 할 일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아이들은 불화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아빠와 엄마의 부정적인 말에 시나브로 마음이 어둡게 물들어간다.
그래도 수민은 부모님의 연애편지를 찾아 두 사람에게 보여주며 부디 화해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그런 수민의 간절한 마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수민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진호는 마음속 응어리진 불만을 부모에게 터트린다.
영화는 부모의 이혼 과정 안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수민의 시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작품은 극 중 배경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효과를 준다. 다만 박물관 장면 등에서는 대사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부모의 자기변명 그리고 서로에 대한 힐난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해야 할 부모에게 아이들이 반감을 갖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수민과 진호의 후반부 행동을 통해 잘 드러난다.
장난감 드론처럼 가벼운 마음이고 싶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무거운 고민을 안고 가라앉아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서글프다.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 마음 깊이 상처가 켜켜이 쌓여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영화는 희망일지 절망일지 모를 마무리를 선택해 깊은 여운을 더한다.
앞서 개봉한 '소리도 없이'(2020)로 얼굴을 알린 배우 문승아는 이 작품을 통해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았다.
◆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 러닝타임: 81분
◆ 개봉일: 6월 24일
◆ 감독: 이지형, 김솔/출연: 문승아, 최준우, 김채원, 임호준/제작: 타이거 시네마, DGC/배급: 씨네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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